• 구 소련의 반체제 인사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고(故)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의 부인 엘레나 보네르 여사가 18일 미국 보스턴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그의 딸인 타티아나 얀켈레비치는 이날 성명을 통해 "깊은 슬픔 속에 어머니가 18일 오후 1시55분(현지시각) 타계했다는 소식을 전한다"면서 "어머니는 지난 2월 입원한 뒤 치료를 받아오다 심부전증으로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고인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편 사하로프 박사와 1972년 결혼하기 전부터 소련 체제를 비판하는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소련 당국의 가혹한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

    고인은 1975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출국 금지조치가 내려졌던 남편을 대신해 상을 받은 것으로도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보네르 여사는 1923년 2월 15일 중앙아시아의 메르브에서 아르메니아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치적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당시 보네르 여사의 가족들도 예외일 수 없었다.

    어머니는 반(反) 공산당 성향의 무슬림에 의한 테러 협박에 시달려 갓 태어난 딸을 데리고 피신했고 당 간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1937년 모스크바에서 체포돼 이듬해 총살됐다.

    유대인이자 보건당국의 직원이던 어머니는 당국에 붙잡혀 17년간이나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혹사당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인과 남동생 알렉세이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 할머니 손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고교를 졸업한 뒤 보네르 여사는 간호사로 군에 입대, 1941년 전장에서 포격을 받아 머리를 다쳤다. 이후 고인은 평생을 안과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 의학을 공부한 그는 학교 동료였던 첫 남편 이반 세미오노프와 결혼해 타티아나와 알렉세이 등 두 자녀를 뒀다.

    그러나 그가 정치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면서 견해차로 인해 1965년 이혼했다.

    소아과 의사가 된 보네르 여사는 1960년대 후반부터 잡지와 라디오, 의학저널 등에 각종 기고 활동을 펼치며 인권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젊은 시절에 참여했던 소련 공산당에서 소련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던 1968년 탈당해 반체제 인사로 돌아선 것이다.

    보네르는 첫 부인과 이혼한 상태였던 사하로프 박사와 정치 행사에 같이 참여한 것을 계기로 만나 1971년 재혼했다.

    사하로프는 소련 체제가 마지막을 고한 1989년 6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하로프는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다 고르키(현 니주니 노브고로드)로 추방됐고 고인도 1980년대 함께 추방돼 유배생활을 했다.

    고인은 소련 당국의 갖은 탄압에도 반체제 인사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에 가담하고 구금되거나 추방된 인물에 대한 정보를 서방에 폭로하는 등 인권운동에 앞장 섰다.

    고인이 젊은 시절 사하로프 박사와 살던 모스크바의 3칸짜리 집은 1970년대 반체제 운동의 본부 역할을 했고 1980년대 유배생활을 하던 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면서도 소련인들의 개인의 자유 확대를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1986년 출간된 저서에서 고인은 "우리 부부가 소련 당국이 싫어하는 일을 할 때마다 자동차 타이어가 구멍 나고 창문이 깨어지는 등의 보복을 당했었다"고 회고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고인은 인권운동을 계속하면서 남편과의 추억을 담은 회고록을 1997년 출간했으며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던 보리스 옐친 정권에 대해 체첸 공격과 민주주의 부재 등을 지목하며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는 옐친과 푸틴 정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활동에 주력했다.

    그는 1995~96년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등 건강이 나빠졌음에도 지난해 모스크바에서 야당 측 집회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하고 KGB 수장 출신으로 대통령을 역임한 블라디미르 푸틴의 퇴진을 촉구하는 청원서에 서명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고인의 인권 활동은 소련 언론인 니콜라이 야코블레프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친정부 성향의 야코블레프는 보네르를 지오니스트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첩자라고 규정하면서 남편을 사주해 반체제 활동으로 끌어들였다고 비판했었다.

    고인의 가족들도 상당한 탄압에 시달리다 1970년대 말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했다.

    고인은 주로 러시아에 머물렀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가족들이 있는 보스턴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보스턴에 몇달씩 머무르곤 했다,

    특히 최근 몇년 간은 보스턴의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인의 시신은 화장된 뒤에 남편과 어머니, 형제들이 묻힌 모스크바 보스트리야코노프 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보네르의 유족들은 부고 소식을 전하면서 문상객들에게 장례식에 꽃을 가져오는 대신 러시아의 주요 인권단체인 안드레이 사하로프 기금에 기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네르 여사는 1992년 사하로프 회고록 출판기념회 참석차 방한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