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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근심을 해결하는 곳, 불교에서 흔히 변소를 이르는 말이다.
인간의 기본 활동인 배설을 별 탈 없이 잘 하는 것만으로도 걱정하나는 덜겠지만, 오래전 기억속의 해우소는 사찰 초입의 외지고 불편한 곳으로, 그곳에 들르면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는 곳이다.
인간 사회의 기본 시설인 화장실은 그러나 아무리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도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어야 할 시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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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화장실이 어느 순간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수세식의 양변기를 넘어 자동 세정기, 소위 비데기가 필수품으로 설치되기 시작했다. 일반 가정은 물론 공공시설에도 비데기가 설치되면서 화장실은 휴게실이 되었다.
비데가 없는 학교나 공공시설에서 용변을 보지 못하는 아동들이 늘어간다는 보도는 우리 삶이 현대문명에 얼마나 빠르게 속박 당하는지 알게 한다.
현대식 화장실은 분명 위생적이며 편안하다. 위생과 편안함은 물과 전기라는 비용을 요구한다.
비위생적인 것을 위생적인 것으로 바꾸는 데는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화장실의 냄새와 불결함을 물로 씻어낸다.
편안함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전기와 같은 외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물을 만들어내고 처리하는데 이미 사용된 보이지 않는 전기는 제외하더라도, 비데기의 작동에서부터 한겨울 변기를 데우는 데까지 많은 양의 전기가 사용된다.
물과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해우소가 있음에도 우리는 오늘날의 화장실을 포기할 수 없다. 인간의 배설물이 귀중한 자원이 되고, 재래식 화장실의 생태적 효용이 아무리 강조되어도 우리는 옛날의 변소로 돌아갈 수 없으며, 돌아가기를 강요할 수 없다.
이미 편리함에 길들어진 이상 불편함을 감수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현대의 문명은 사실상 물과 에너지에 기초한다.
물은 생존의 기본을 넘어 이제는 생활의 기본이다. 생활이 복잡해질수록 물에 대한 수요는 증가한다.
에너지 역시 그 수요량은 문명화와 직결된다. 화석에너지든 전기에너지든 모든 에너지는 무엇인가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다.
사회가 활발할수록 에너지 수요 역시 증가한다.
문제는 물과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과 에너지의 지속적인 확보는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이다.
물론 물과 에너지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는 화장실의 물을 아끼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가고, 자전거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불편을 감수하라 설득할 수 없다. 국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들이 최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구나 오늘날 물과 에너지의 문제는 국가적 경쟁력이 되고 있다. 분명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생태계와 지구 환경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앞날을 발목 잡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새로운 경쟁력이 되어야 한다.
오랜 역사에서 인류는 하천관리를 통해 물 문제를 극복해 왔다. 에너지가 중요해진 현대사회에서 원자력에 관한 기술은 국가의 과학적 진보와 맞물려 있다.
물과 에너지는 전 지구적인 화두다.
그와 관련하여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원자력 발전은 우리의 현재이자 바로 지금이 아니라도 곧 해결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4대강 사업반대와 원전추가설치 반대 피켓 시위를 벌인 독일 교포들의 소식을 현대식 해우소에서 마주하니 착찹한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