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1’ 자신의 수인번호를 제목으로 자전적 에세이 출간 신정아 “호텔서 만난 정운찬 대놓고 나 좋다고..”
  • “이번 책은 지난 4년간의 기록입니다.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었고 지금까지도 전 (수감번호)4001번으로 사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책을 내면서 4001번과 오늘 헤어지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30대 미대 교수, 광주비엔날레 감독에 올랐다가 한 순간에 학력위조범, 꽃뱀으로 추락한 신정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전적 에세이를 통해서다. 신씨는 22일 롯데호텔에서 자신의 수인번호를 제목으로 한 ‘4001’(사월의 책)을 냈다.

    이 책은 지난 2007년 사건이 불거진 직후부터 최근까지 약 4년간 쓴 일기 중 일부를 편집한 것으로 예일대 박사학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관계, 동국대 교수 채용 과정의 정치권 배후설, 정운찬 전 총리 및 재계 인사와의 인연, 일부 인사의 부도덕한 행위까지 언급돼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신정아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도 풀어냈는데, 언젠가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더니 "어린 친구가 묘하게 사람을 끄는 데가 있다. 말씀을 참 잘하시네"라고 말하며 "더 큰 일을 위해 세상에 나서보지 않겠냐"고 권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 할 때마다 자신에게 의견을 물었고 "말하는 것이 또박또박하다", "대변인을 해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칭찬을 했다고 신정아는 주장했다.

    또 신정아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을 볼 것을 권했다는 사실도 언급하며 "단순히 권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렇게나마 알아두라고 하신 것 같다"고 의중을 풀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심을 쏟아 주셨지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없다"며 노 전 대통령과 특별한 사적 관계는 없었음을 강조했다.

  • ▲ 신정아씨가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자신의 수인번호를 제목으로 한 '4001' 자전적 에세이집을 냈다. ⓒ 연합뉴스
    ▲ 신정아씨가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자신의 수인번호를 제목으로 한 '4001' 자전적 에세이집을 냈다. ⓒ 연합뉴스

    - 실명으로 기재된 사람이 있고, 이니셜 처리된 사람이 있다.

    “매일 기록한 일기에는 실명이 적혀 있다. 이 책은 일기를 재편집한 것이다. 실명이 등장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이니셜로 처리한 것은 법률적인 부분 때문이다. 4년이 지났는데 책을 내면서 감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표현이 거칠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고 누군가에는 아픔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부분들이 숨겨지게 되면 지난 4년의 세월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실명을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 새로운 출발을 한다고 했는데 미술계에 복귀할 생각인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다. 미술계에는 내 사건의 파장이 커 많은 사람들에게 심려를 끼쳤기 때문에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좋은 자리가 있으면 최선을 다해 일해볼 생각이다.”

    - 책 표지가 독특하다. 본인이 그린 것인가.

    “1994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 있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가장 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이 아버지다. 아버지에게 죄송하다.”

    - 정운찬 전 총리 내용도 담겨 있다.

    “더 많은 내용이 있지만 책의 내용 외에는 더 말할 수 없다."

    신정아는 책을 통해 “정 총장은 서울대 미술관 관장에 내가 적격이라며 미술사 교수 임용과 동시에 미술관을 맡기면 내 나이가 어려도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면서 “언론을 통해 보던 정 총장의 인상과 실제 내가 접한 정 총장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겉으론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고 주장했다.

    “정 총장은 안주 겸 식사를 시켜놓고서, 필요한 자문을 하는 동안 처음에는 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렸다…(중략) 내가 늘 저녁자리를 빨리 빠져나가자 정 총장은 나와 먼저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사람을 만나려는 것 같았다. 정 총장은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다른 일정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를 떠서는 곧장 밖에서 다시 나에게 연락을 해오는 것이었다.” (101~102쪽)

    “(서울대 자리를 거절 이후) 팔레스 호텔 (바)에서 만났을 때는 아예 대놓고 내가 좋다고 했다. 앞으로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고, 심지어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날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정 총장은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돌발행동을 내 앞에 보여줬다” (104쪽)

    -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의 배후설도 계속 제기됐다.

    “그분을 언급하는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럽고 죄송하다. 내 처지가 좋은 입장이라면 모를까. 과연 이렇게 인간적으로 신뢰를 하고 믿고 격려를 해주는 분들이 배후설이라고 하면 사회 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인간적인 부분을 표현했다. 사실 위주로 말을 아끼는 입장에서 썼다.”

    - 학력 위조를 아직도 브로커의 잘못이라 주장하나.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다만 섭섭한 부분이 있다. 이 위조부분에 대해 남의 도움을 받은 것은 맞지만 제가 위조를 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이건 저의 도덕심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죽을때까지 제 가슴의 무거운짐으로 속죄해야 한다. 5월 말에 동국대와 예일대 소송이 끝나는 것으로 안다.  재판 중에는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적었다.”

    - 기자들과의 관계도 담겨 있다.

    “큐레이터로 시작해 문화담당 기자들을 주로 만났다. 전시소개나 전시정보등을 교환하지만 필드 외에 다른 얘기도 많이 듣고 사회생활 하는데 도움 많이 얻었다. 믿고 언니, 동생처럼 지냈는데 그런 것들이 안좋은 기사로 돌아오면서 많은 서운함이 있었고, 안 쓸 수도 있었지만 서운했다고 말씀 한번 드리고 고마웠던 것도 말씀드리고 싶었다. 솔직한 작은 이야기들을 다 담았다.”

    - 변양균 실장은 이후에 만난 적이 있나.

    “감추는 것이 구차한 것 같아 사실 그대로 전하고자 했다. 잊고 싶다는 것이 꼭 나쁜 기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을 놓고 상상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실을 이랬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연이라 그래도 새롭게 시작하는데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실을 밝혔다. 글 그대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 누드사진에서 비롯된 성적 이미지에 대해서는.

    “(누드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는 그렇게 당황하지 않았다. 제가 하는 일이 작가의 창작성을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이런 작품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로비설까지 확장되면서 지금까지도 그 부분에 대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데 가장 힘들었다. 제 스스로가 콤플렉스가 생긴 것 같다. 굉장히 수치스러운 부분 중 하나고 사회생활 하는 것 중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여성으로서 최소한의 가치도 다 까발리고 창피하고 수치스러워 저도 모르는 사이 피해의식이 생겼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책을 내고 세상에 나오면서 몸에 열꽃도 나고 긴장되고 그렇다. 제 마음에 있는 서운함들.  누구에 대한 원망이나 섭섭함 등을 다 쓸어내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4년 전과 비교해 많이 건강해진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심려 끼쳐드려 죄송하고 제 사건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많이 마음 고생하셨는데 그분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