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준칼럼>정운찬 위원장에게 힘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교수, 대학총장, 국무총리 등 화려한 경력의 정운찬 위원장이 동반성장위원회를 맡고 처음 내놓은 회심의 실천과제 ‘이익공유제’를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가 예상외로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설정한 이윤목표를 초과 달성했을 경우 그 일부를 주주, 사원과 함께 협력업체에도 제공하자는 취지의 이익공유제는 나오자마자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덫에 걸렸다. 홍 최고위원은 “총리를 지내신 분이 동반성장위를 맡아 대기업 이익을 중소기업에 할당하자는 급진 좌파적 주장을 하고 있다”며 정 위원장을 정면 비판했다. 홍 최고위원은 “대기업이 수출과 성장을 통해 1년에 수 조원을 남기는데 중소기업의 이익구조는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며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이익의 몇 %를 중소기업에 돌려주자는 급진 좌파적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기업을 대표하는 단체인 전경련도 공식입장은 아니지만 인터뷰 등을 통해 이익공유제에 마뜩찮은 반응을 보였다.

    정 위원장은 지난 2일 자진해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홍 최고위원의 비판에 대한 해명과 함께 진심을 알리겠다는 자리였다. 기자간담회에 임한 정 위원장은 표정은 “학자로서, 행정가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이익공유제를 최상의 정책수단으로 판단한 진심을 왜 몰라주느냐”고 호소하는 듯했다.

    그동안 속이 얼마나 탔는지 정 위원장은 “이익공유제는 대기업 이윤을 빼앗아 중소기업에 나눠주자는, 이른바 반시장적인 또는 사회주의적인 분배정책이 아니다”고 이익공유제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익공유제가 “과거지향적 분배정책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투자유인제도이며, 그것도 대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설계, 집행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이상 부연설명을 듣지 않아도 정 위원장의 이익공유제란 요즘 유행하는 ‘상생’과 같은 맥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생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던진 화두다. ‘공정한 사회’를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삼겠다고 강조하자 대기업들은 다투어 ‘상생경영’을 선언하고 실천계획과 사례를 발표하며 화답했다.

    그런데 저명한 경제학자 출신으로 국무총리를 지낸 분이 동반성장위원장을 맡고 첫 과제로 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온 것을 보면 ‘상생경영’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정 위원장은 총리 시절 한 납품업체 사장으로부터 들은 말이 가슴에 파고들었다고 고백했다.

    “총리, 저 이민 가야겠어요. 대기업이 납품가를 너무 후려쳐서 도저히 더 이상 이 땅에서 기업 못하겠어요.” “그 정도로 심하냐?”고 묻자 그 납품업자는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비슷한 얘기를 다수의 중소기업 사장으로부터 들은 정 위원장은 대통령께 실상조사와 대책 수립을 건의해 실태조사까지 했으나 총리에서 물러나는 바람에 후속조치가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13일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정 위원장이 이익공유제를 최우선 화두로 내세운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통한 선순환구조의 확립 없이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동반성장은 경제 차원을 넘어서 공정한 사회, 따뜻한 자본주의, 한국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정 위원장의 주장은 신앙고백처럼 절절했다.

    불행히도 정 위원장이 언급한 사태는 대한민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모든 분야에 양극화가 만연해있지만 특히 경제 분야는 심하다.

    대기업의 대형슈퍼마켓(SSM)이 동네 구멍가게를 몰아낸 지 오래고, 커피숍도 거대자본의 체인점들이 개인 커피숍을 쫓아내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음식점까지 대형 체인점의 등장에 설 땅을 잃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통큰 이벤트’를 벌일 때마다 동네의 영세점포들은 비명을 지른다.

    잘 나가는 대기업의 상생 모범사례에 등장하는 협력업체는 극히 일부다. 그리고 정말 운 좋은 중소기업들이다.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 손을 뻗치는 게 대기업의 속성이다. 이런 대기업과 상대하는 중소기업은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는 불안에 떨고 있다. 당장은 협력관계에 있다 해도 대기업은 기술, 인력을 빼내거나 자본의 힘으로 중소기업을 삼키기 위한 기회를 노리고 있다.

    최근 금형업계가 처한 위기가 단적인 사례다.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은 일간지에 “대기업들의 금형사업 개시에 따른 무분별한 인력스카우트를 자제해줄 것”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게재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두 곳이 정밀금형회사를 설립, 전문인력을 스카웃해가면서 중소 금형업체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되자 나온 생존의 몸부림이다.

    “대기업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지만 협력업체는 문을 닫는다”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실태조사를 해도 협력업체의 명줄을 쥐고 있는 대기업이 함구령을 내려 실태조사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풍토 속에 ‘대기업 스스로 상생경영에 앞장서라’고 독려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막연한 상생경영을 ‘이익공유제’란 시스템으로 사회에 정착시키자는 정 위원장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불행해진다. 정 위원장이 어떤 벽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학자적 양심을 지켜 ‘이익공유제’를 정착시킨 사람으로 역사에 남기를 바란다.

    (본사부사장/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