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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기본을 튼튼히 하는 일이 으뜸이다. 정치고, 경제고, 사회 혹은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스림의 원칙은 기본을 튼튼히 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여러 현실을 세세히 살펴보면 기본을 무시한 채 현실의 여러 문제를 마치 땜질을 하듯 그날그날 넘기고 보자는 식의 안일무사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개된 토론을 시끄럽게 여기게 되고, 밀실에서 일을 꾸며서 발표하는 식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2009년 2월,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의 진태하 이사장이 생존해 있는 역대 국무총리 21명 중 20명을 찾아가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설득하였고,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문건에 서명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전직 국무총리 20명의 서명을 받은 ‘초등하교 한자교육촉구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하였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여기에 거론할 겨를이 없지만, 강력한 두 가지가 의문점이 솟구쳐 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첫째는 살아있는 전직 국무총리 모두가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면, 왜 총리 재직 중에 그런 의견(신념)을 제기하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여기에 우리 지식인들의 식견과 행실의 불일치가 명백히 드러나 있다. 정답(正答)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선 시대의 지식인들이나 공직자들을 나라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면 자신의 불이익을 감내하고서라도 실천에 옮겼으며, 그 뜻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지식인의 도리라고 여기면서 실천하였다는 사실이 우리가 배워야 할 역사인식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살아있는 전직 국무총리 20명이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이 절실하다는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하였다면 대통령의 의사가 피력되어야 마땅한데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으로 인해 사회의 여론이 두 패로 갈라지면서 그 찬반이 이론적으로 대립되고, 그 대립이 마치 국론의 분열처럼 느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에 대한 찬반의 토론은 반드시 격어서라도 국민교육의 진로를 가려야 하는 중대 사안이다. 이 비켜갈 수가 중차대한 일을 토론이 무서워 피하려 하는 것이야 말로 소통(疏通)의 부재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가 없다.조선시대는 진정서(의견서)나 건의서를 상소문(上疏文)라고 했다. 승정원(承政院:요즘의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올라온 상소문을 추리거나 요약(要約)할 수가 없다. 원문 그대로를 임금에게 올려야 하고, 임금은 읽은 상소문에 대해 반드시 비답(批答)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임금의 책무다. 19세의 기생이 올린 상소문에도 비답을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 아무리 임금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군주하고 하더라도 백성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선정(善政)임을 우리 역사는 세세히 적어서 전하고 있다.
이에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에서는 초등학교 학부형의 뜻을 물어보기로 하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귀애하는 자녀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것을 어찌 생각하느냐는 설문지의 질문에 놀라지 마라, 86%의 학부형들이 한자를 가르쳐 주기를 희망하였다. 이것은 소문이 아니라 문건으로 남아있는 기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직 국무총리 전원(20명)이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을 건의하였고, 초등학교 학부형 86%가 귀애하는 자녀들에게 한자를 가르쳐 주기를 요청하고 있는 데 대한 대통령의 의견을 밝혀야 하지를 않겠는가. 바로 이런 것이 기본을 존중하고 갖추어가는 일이다. 이에 대한 찬반토론을 국론의 분열이라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