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믿지 못해서 가정이 무너지고 단체가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지고 세계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서로 믿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명료합니다.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의 반대는 허위입니다. 허위란 무엇인가. 거짓입니다. 가짜라는 것도, 속임수라는 것도 모두 가 거짓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는 가짜가 수두룩하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한 점을 일제시대에 구입하여 어느 저명인사가 그 댁의 벽에 수십 년 동안 걸어 두었었는데 어느 날 고서화의 전문가가 그 그림을 장시간 들여다보고 나서, “선생님 , 재미가 없습니다.”라고 하며 그 그림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 자리에 나도 있었습니다.

    졸업장이나 성적표의 위조. 변조가 가끔 발각됩니다. 위조지폐, 위조수표는 누구를 속이려는 작간입니까. 경마장의 기수들이, 씨름판의 씨름꾼들이 승부를 조작합니다. 챔피온 벨트를 놓고 붙는 권투시합에도, 묘기가 속출하는 프로 레슬링에도 미리 짜고 승부를 겨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줄음 잡는다는 정치인들의 입에서 새빨간 거짓말이 쏟아져 나오고, 상당수의 스님이니 사제니 목사니 하는 사람들의 사생활도 엉망이라는 이 마당에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합니까.

    이대로는 안 될 것이 한 인류의 이 처참한 현실에서 벗어날 길은 아주 없는 것입니까. 1960년에 일어난 5.16군사 혁명이 내세운 ‘혁명공약’중 하나가 ‘구악을 일소하고’였습니다. ‘구악’을 ‘일소’하기 전에 ‘신악’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구악’과‘신악’의 근본은 모두 거짓에 있었습니다. 오늘의 한국에서는 ‘신악’과‘구악’이 뒤범벅이 되어 구별조차 불가능한 형편입니다. 법의 철저한 집행이나 범죄방지의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거짓 없는 건강한 세상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이제 절망 밖에 없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진실 하나로’라는 운동을 우리 각자가 시작하지 않고는 희망이 없습니다. 먼저 나부터 내면의 세계에 ‘혁명’을 일으켜 목숨을 걸고 ‘진실 하나로’살기를 힘쓰는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자기혁명이 가정의 혁명으로 이어지고 그 혁명이 우리사회에서 거짓을 몰아내고 ‘진실하나로’로 살게 되는 일이 과연 불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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