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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무기를 들지 않았다. 그들의 무기는 말(言)이면 족했다.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낸 시민의 힘이 말과 글을 매개로 결집했다고 13일(현지시각) 평가했다.
반(反)정부 시위 기간 시위대는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뜻이 절실함을 알리고자 방언과 외국어 등 온갖 도구를 동원해 창의적 구호들을 쏟아냈다.
시위대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 가운데 하나인 `이르할(irhalㆍ`떠나라'는 뜻)'을 비틀어 쓴 방식만 봐도 이들의 독창성이 물씬 묻어난다.
시위 기간 타흐리르(해방) 광장 등 시위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 단어를 이집트 상형문자로 바꿔 썼다. 21세기에 고대 이집트 군주 파라오처럼 군림하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시민의 요구를 당최 이해하지 못하니 고대 문자로 쓰면 알아듣겠느냐는 재치가 담긴 말이다.
시민들은 또 구호 속에 아랍어 경어체와 평어체를 뒤섞어 `이르할'이 `꺼져라'를 뜻하는 단어 `이므쉬(imshi)'임을 교묘히 드러내기도 했다.
국제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시위대의 무기는 모국어를 넘어 외국어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심지어 시위현장에는 중국어로 쓰인 표어까지 등장했다. 시민이 아랍어로 말하면 우둔한 무바라크가 알아듣질 못하니 혹 중국어로 쓰면 자신들의 요구가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빈정거림이 느껴진다.
젊은 인터넷 세대가 시위의 주축이 됐음을 새삼 느끼게 하는 구호들도 있었다. `무바라크는 지금 오프라인' `무바라크 실행 실패(fail)' `무바라크 삭제(delete)' 등 독특한 표현들이 윈도 바탕화면의 `휴지통' 아이콘과 함께 등장했다.
카이로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영국 옥스퍼드대 월터 암허스트 중동학과 교수는 "뉴미디어 활용은 이번 혁명의 정체성 가운데 일부"라며 "젊은 층은 나이 든 세대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표현 수단에 통달했다"고 말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킹 서비스(SNS)도 시민들의 주요 무기로 빼놓을 수 없다.
탄생한 지 다음 달로 5년째인 트위터는 2009년 이란 대선 반대시위와 지난달 튀니지 시민혁명에 이어 이집트에서도 시민이 시위를 조직하고 의견을 나누는 주요 매개체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넷판은 13일 이같은 현상에 대해 "혁명이 트위터화(twitterise)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시위에서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구글 임원 와엘 그호님도 인권운동가 폭행치사 사건에 항의하는 페이지를 페이스북에 개설, 시위를 주도하는 등 페이스북의 영향력 역시 이집트 혁명을 통해 거듭 증명됐다.
물론 SNS가 민주화에 늘 도움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탐구한 저널리스트 예프게니 모로조프는 시위 참가자 가운데 인터넷이나 SNS를 쓸 줄 모르는 이들도 상당수였던 만큼 인터넷 덕에 시위가 성공했다고 보기는 무리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집트에서 시위 규모가 가장 컸을 때는 정부가 인터넷을 차단했을 때"라고 지적하고, 트위터 등 외국 SNS를 차단한 중국 등의 상황을 보더라도 인터넷은 정권이 시민을 감시하는 도구로 언제든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