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헌조항 개정 중심 개헌을
양 동 안
현행 헌법에는 손질해야 할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많다.
정치권에서 개헌문제만 거론되면 논란의 초점이 되는 정부형태(권력구조), 대통령의 권한과 임기 등의 문제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필자는 그런 것들을 두고 현행 헌법에 내포된 문제점들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필자가 말하는 문제점이란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불합리한 점이 명백한 사항들을 말한다.이명박 대통령이 개헌문제를 거론하면서 지적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 혼선도 물론 현행헌법에 내포된 문제점들의 하나이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현행 헌법의 최고 문제점은 헌법개정 조항이다.
현행 헌법은 제128~130조에서 헌법개정의 절차와 의결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들 조문에 따르면, 헌법개정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만 제안되며, 개헌안이 의결되려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국회에서 통과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하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이러한 개헌조문은 헌법의 내용에서 발견된 사소한 잘못도 쉽게 고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예를 들면, 헌법에 용어 하나가 잘못된 것이 있어서 그것을 교정하려 하더라도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나 대통령의 발의가 있어야 하고,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지지와 국민투표에서의 절대적 지지가 있어야 한다.
헌법개정을 이토록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기는 하지만, 헌법이란 것이 과거에 이루어진 정치적 결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헌법을 제정 또는 개정할 당시 그 제·개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가 매우 현명하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 헌법을 제·개정할 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불합리한 타협도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헌법은 그것이 제·개정된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상황이 변하면 필연적으로 현실과 부합하지 않고 국정운영에 폐해를 초래하는 문제점들을 노출하게 된다. 헌법개정을 무조건 어렵게 만들어놓으면 그런 문제점들이 노출되어도 그것을 제때에 고칠 수 없다.
헌법개정을 무조건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은 자동차수리와 비교해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자동차를 구입하여 타고 다니는데 모든 자동차 수리는 자동차를 제작한 본사 서비스센터에서만 하도록 해놓으면 자동차 이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도어의 손잡이가 깨진 것이라든지 라이트의 전구가 고장 난 것과 같은 사소한 고장들을 고치기 위해 먼 거리를 주행하여 본사 서비스센터를 찾아가서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수리를 해야 한다면 그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헌법에 있어서 국정운영과 국민생활에 폐해를 주는 것이 명백하면서 동시에 정치세력들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에는 무관한 실무적 조항의 오류를 고치는 것조차도 어렵게 만들어 놓으면, 헌법이 국가운영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규칙이 아니라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질곡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개정조항을 어떤 내용으로 고쳐야 할 것인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개헌발의 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헌법의 조문들을 △개정불가 조문, △개정에 국민투표 통과가 필요한 조문,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만으로 개정 가능한 조문 등으로 분류하는 내용으로 고치면 합리적일 것 같다. 이렇게 해놓으면 헌법을 함부로 개정하지 못하게 하는 정신도 살리고, 헌법에 내포된 문제점들 가운데 정치세력들 간의 이해대립이 첨예하지 않은 실무적 문제점들은 쉽게 고칠 수 있게 될 것이다.현재의 18대 국회에서 개헌조항만 이같이 개정해놓아도 18대 국회는 이 나라 정치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은 개헌을 매우 엄청난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달랑 헌법의 개헌조항만을 개정하기 위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까지 회부한다면 국민으로부터 ‘웃긴다’는 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기왕 개헌을 추진하려면 개헌조항의 개정 중심으로 개헌을 추진하되, 이명박 대통령이 지적한 헌재와 대법원의 역할 혼선문제 등 정치세력들의 이해대립이 첨예하지 않은 사항이면서 국정운영이나 국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헌법의 문제점들을 같이 개정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현행 헌법 내용에 있어서 정치세력들의 이해대립이 첨예하지 않은 사항이면서 인식의 혼란이나 국정운영에 지장을 주는 헌법의 여타 문제점들로는 전문 및 제4조와 제8조 4항에 있어서의 용어불일치, 헌법 제54조 2항의 국회 예산안 통과시한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전문과 제4조에 표기되어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제8조 4항에 표기되어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는 동일한 의미인지 아닌지를 정리하는 개정이 있어야 한다. 두 용어의 의미가 동일하다면 다르게 표현된 것을 동일하게 교정해야 하고, 의미가 다르다면 그 의미의 차이를 헌법의 어디에선가는 설명해주어야 한다.
헌법 제54조 2항은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이(예산안)를 의결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국회가 그런 규정을 위반했을 경우 국회에 어떤 불이익 조치를 가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헌법 어디에도 없다. 그 결과 국회가 해마다 헌법을 위반하고 있어도 그를 방치할 수밖에 없다.헌법개정 조항의 개정을 중심으로 개헌을 추진하되, 정치세력의 이해대립이 첨예한 정부형태나 대통령 권한과 임기 문제는 개헌대상에서 제외하고, 헌재와 대법원의 역할 혼선의 정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적 기본질서의 용어정리, 국회의 예산안 통과시한 위반에 대한 대책 등 실무적인 문제점들의 해결을 모색하는 개헌을 추진한다면 그 개헌에 대해 극렬하게 반대하는 정치세력도 없을 것이고, 국민과 상관없는 정치인을 위한 개헌을 추진한다는 비판여론도 사라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