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의 반(反) 정부 민주화시위가 갈수록 격화되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중동 지역의 최대 동맹 지도자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위태롭게 하는 것도 고민스럽고, 그렇다고 현 집권세력을 감싸안으며 이집트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저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위가 사그라지지 않고 군까지 투입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미 행정부의 입장은 무바라크 대통령을 옹호하는 태도에서 거리를 두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8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집트 정부와 치안당국이 시위대 대응에 자제를 해야 하며, 민주화를 원하는 시민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특히 이집트 정부는 국내 인터넷.휴대전화 통신 봉쇄조치를 중단해야 하며, 평화적 시위를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번 시위는 이집트 사회 내부에 깊숙이 자리잡은 불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집트 정부는 폭력적 진압이 이러한 불만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집트 정부의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하는데 무게가 실린 입장이었다.

    전날인 27일 조 바이든 부통령이 공영방송 PBS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을 독재자로 부르지 않을 것"이라며 `합법적이고 정당한 시위일 경우'라는 단서를 달면서 시위대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한 발언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행정부쪽은 아니지만 민주당 중진인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은 이날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오는 9월 대선의 `민주.자유.보통 선거'의 시행을 촉구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잠재적인 야당 대통령 후보인 노벨평화상 수장자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염두에 두고 민주적 절차에 따른 선거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민주화 조치 압박은 행정부쪽보다 의회쪽에서 더 강한 양상이다. 행정부는 오는 9월 대선의 민주적 절차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선거 절차 문제는 선거를 통한 무바라크 체제 전복까지 염두에 둬야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악관과 국무부는 '민주화 목소리에 귀기울이라' '폭력은 없어야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표명하면서, 향후 사태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줄타기 외교'를 계속하면서 전략적 결정은 유보하고 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의 이날 정례브리핑은 무바라크 대통령과 그의 하야를 원하는 이집트 국민중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는 노선을 견지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고심어린 스탠스를 대변했다.

    기브스 대변인은 유혈사태 자제를 당부하면서도 "이집트의 유동적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이 문제는 한 사람(무바라크)를 택하느냐, 한 나라(이집트)의 국민을 택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집트 정부는 이집트 국민들의 문제이다", "사태는 이집트인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는 언급을 되풀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과 아직 통화한 사실은 없다고 기브스 대변인은 전했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는 사태를 주시하면서 현지 상황판단에 따라서 전략적 결정의 방향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집트 사태에 대해 국가안보회의(NSC) 참모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고, 토요일인 29일에도 NSC 회의를 개최해 상황을 예의주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