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마다 꿈이 있는 것은 확실하고 그 모든 꿈이 다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런데 북에 고향을 두고 38선을 넘어온 모든 실향민들의 한결같은 꿈은 두고 온 그 고향땅을 다시 밟아보는 일임이 또한 분명합니다.

    실향민들 중에는 다시 먼 길을 떠나 미국 땅에 흩어져 사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그들의 간절한 염원도 다시 고향에 가보려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타향살이 몇 해련가 손꼽아 세어보니” - 나이를 먹어가면서 유랑민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뿐입니다.

    북에 살다가 해방을 맞이하고 소련군 등에 업혀 김일성이 평양에 입성한 뒤 날마다 자유가 … 희박해져 산소가 없는 공기를 마시고 살 수 없듯이 우리들의 호흡이 곤란해짐을 느끼고 평양을 탈출하여 월남하던 때만해도 나이가 80이 넘도록 고향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6·25사변이 터지기 전에도 여러 차례 미소공동위원회가 평양과 서울에서 개최될 때마다 그들을 통하여 혹시 남북통일의 꿈이 실현될 것이라는 허망한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인민군이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감행하였고 전혀 준비가 없던 국군은 밀릴 수밖에 없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던 암담하던 시절에는 절망적 이였으나 유엔군의 인천상륙으로 2·28 수복이 실현되어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향해 진격하던 때에는 통일의 꿈이 곧 실현될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민군을 도와 중공군이 다시 쳐내려오는 바람에 대한민국은 또다시 수도를 항도 부산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휴전선이 그어지고 휴전협정이 체결된 것이 1953년의 일이니 57년의 긴 세월이 흐른 셈입니다.

    남북 간의 이산가족 상봉은, ‘빛 좋은 개살구’격으로 알맹이는 전혀 없는 겉치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통일의 꿈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한해를 또다시 보내면서 이루지 못한 꿈은 여전히 통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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