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25)

     복도 끝 방인 취조실에는 대위 계급장을 붙인 장교가 통역을 뒤에 세우고 앉아있었는데 옆쪽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바로 질레트(Philip L. Gillett) 총무였다. 이미 깊은 밤이어서 감옥 건물 안은 조용했다.

    내가 앞으로 다가가 섰을 때 대위가 말했다.
    「이승만씨, 당신은 독립군과 연루된 증거가 하나둘이 아냐.」

    통역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대위는 말을 잇는다.
    「지난번 평양에서 독립군과 접선한 증거가 있어. 서문교회 유수환 목사가 잡혀 자백을 했다구.」

    놀란 내가 숨을 멈췄고 대위의 말이 이어졌다.
    「YMCA에서 당신과 같이 일한 서순영이 만주의 독립군과 합류한 것도 알아. 당신은 그것만 가지고도 3년형은 받을 수 있어.」

    나는 내 몸에 찬기운이 덮여지는 느낌을 받았다. 감방 안에서 조금 전에 만난 사내가 건성으로 때린 형기도 3년이었던 것이다.

    그때 대위가 힐끗 질레트에게 시선을 주고 나서 물었다.
    「질레트씨가 당신이 한국 YMCA 평신도 대표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는군. 알고 있나?」

    대위의 말이 끝났을 때 질레트가 먼저 대답했다.
    「물론이오. 그 일 때문에 감리교의 동북아시아 총책임자인 해리스 감독께서도 곧 경성에 오실 것입니다.」

    대위의 시선은 나에게 꽂혀있었지만 질레트가 통역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끈질기게 잇는다.
    「해리스(Merriman C. Harris) 감독께선 데라우치 총독과 면담할 계획도 갖고 계시오. 총독부에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목사는 그만 말하시오.」
    질레트의 말을 들은 대위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지만 기세가 사납지는 않았다. 총독과 면담한다는 말에 기가 꺾인 것이 분명했다.

    그때 질레트의 말이 이어졌다.
    「이승만씨의 미국 파견이 그렇게 부풀려진 것 같소. YMCA의 조선 평신도 대표로 선발되어 미네아폴리스의 감리교 총회에 참석하기로 된 사람이 독립군으로 간도 땅에 가다니요? 해리스 감독한테 물어보면 확실해질 것 아닙니까?」

    이번에는 질레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미 진술을 한 것을 다시 되풀이 해서 말한 것이다.

    그러자 대위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미국으로 출발할 때까지 밀착감시를 붙이겠어.」
    그리고는 파리를 쫓는 것처럼 나에게 손을 내저었다.
    「나가라구, 당장.」

    통역의 말을 듣지 않았어도 분위기로 눈치 챈 질레트가 일어나 내 팔을 잡았다. 눈에 안도의 기색이 가득차 있었으므로 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가십시다. 교장선생.」

    뒤에 서있던 헌병 하나가 대위의 말을 듣더니 앞장 서 안내를 해 주었으므로 우리는 미로와 같은 감옥을 빠져나왔다.

    헌병대 정문 밖으로 나왔을 때는 3월 초였지만 몹시 추웠다. 눈발도 흩날리고 있는데다 짙은 어둠속이어서 가슴이 더 먹먹해졌다.

    그때서야 내가 질레트에게 물었다.
    「내가 평신도 대표로 선발 되었습니까?」

    그러자 질레트가 발을 떼면서 대답했다.
    「곧 선발 될 겁니다.」
    그리고는 말을 잇는다.
    「다 잡혀갑니다. 이제 YMCA도 더 이상 은신처가 아니오. 이것이 당신에게 이곳을 빠져나갈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