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24)

     헌병대에는 처음 잡혀왔다.
    한성감옥서에 수감 되었을 때는 그래도 조선인 시위대 군사가 나를 호송했고 재판도 대한제국 법정에서 받았다. 그런데 이곳은 일본인 세상이다.

    조선인 통역, 군속들이 오갔지만 모두 하인(下人) 신세, 나는 먼저 용산 헌병대 구치소에 수감 되었는데 밤이 되도록 부르지 않았다.

    「무슨 일로 잡혀 온거요?」
    먼저 들어와 있던 50대쯤의 양복장이가 물었으므로 나는 쓴웃음부터 지었다.

    아내가 홧김에 소리 지른 말을 정보원이 듣고 고발을 당했다고 말해야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감방 안에는 둘 뿐이었는데 시멘트 바닥에 돗자리를 깔았을 뿐이어서 춥다. 복도에 등 하나만 켜놓아서 어두웠고 악취에 코가 막혔다. 감방 안에 칸막이도 없이 항아리 한 개가 놓여졌는데 그 곳이 화장실이다.

    「만주로 도망친다고 누가 고발을 한 것 같소.」
    사내가 계속 시선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말했더니 곧 대답이 왔다.
    「흥, 독립군하고 연좌죄로 묶어 3년은 감옥살이를 해야겠군.」
    「에, 여보, 말 삼가시오.」

    화가 난 내가 사내를 쏘아보았다. 통성명도 안한 사이에 불쑥 내지르는 말이 무례했기 때문이다.

    「증거도 들은 말 뿐인데 어찌 그렇게 엮어 놓는단 말이오?」
    「저놈들이 그냥 잡아온 것 같소?」
    사내가 빈들거리면서 말을 잇는다.
    「아마 지금쯤 증거를 다 조작해 놓았을걸? 저놈들이 마음만 먹으면 살인죄를 뒤집어씌우는 것도 다반사요.」

    내가 외면해 버렸더니 사내는 길게 숨을 뱉는다.
    「나는 사흘째 이곳에 잡혀 있는데 하루 두끼 조밥에 시래기국만 던져주고 부르지도 않아. 이제는 불러주기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어.」
    「......」
    「내 죄목이 뭔지 아시오?」

    그리고는 제 말에 제가 대답했다.
    「난 이천에서 농토를 좀 갖고 있는데 독립군 군자금을 대었다는 밀고를 받고 잡혀왔어. 그 밀고를 한 놈이 누군지도 내가 알아. 나하고 농토 문제로 다퉜던 오가란 놈이 일본놈과 짜고 날 잡아넣은 것이지.」

    사내가 마치 남의 일처럼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지금 세상에서 출세를 하고 싶거나 돈을 모으려면 일본놈을 끼고 살아야 돼. 내가 먼저 손을 못 쓴 것이 한이야. 그 오가놈보다 내가 먼저 일본 헌병이나 관리 한두놈을 내 편으로 끌어들였어야 했어.」
    「......」
    「그래서 어제 면회 온 처남한테 내 농토를 떼어서 일본놈한테 뇌물로 먹이라고 했어. 오가놈보다 더 센 일본놈을 잡아서 더 많이 먹이면 나갈 수가 있겠지.」

    그때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헌병들과 통역이 나타났다. 철장 밖에 선 장교가 지시하자 병사들이 문을 열었다.

    「이승만, 나와.」
    장교의 말을 뒤에 선 통역이 통역했다.

    그때 안쪽의 사내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선생이 이승만씨요?」
    그러더니 달려들어 내 손을 잡는다.
    「미국 박사가 아니시오? 내 처남이 만민공동회원 윤후영이요. 모르시오?」

    내가 머리를 저었더니 사내가 내 팔을 흔들었다.
    「이럴 수가. 이렇게 선생을 만나다니.」

    그때 장교가 소리쳤고 통역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빨리 나와! 그리고 당신은 앉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