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23)
      
     일은 다음날 오후에 일어났다. 교무실에서 회의를 하던 나는 사환 임군이 서둘러 들어서는 바람에 머리를 들었다. 선생들도 모두 임군을 본다.

    내 옆으로 다가온 임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장선생님, 교장실에서 헌병대 장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터라 분위기가 굳어졌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더니 질레트가 따라 일어섰다. 그의 얼굴도 굳어져있다.
    「같이 가십시다.」

    교장실에는 처음 보는 헌병대위가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뒤쪽에 통역과 헌병 두명이 부동자세로 서있다. 위압적인 자세였다. 장군보다 영관급 장교가, 그보다 위관급이 더 위세를 부리고 거만하다.

    나와 질레트가 앞쪽에 앉았더니 20대 후반쯤의 대위가 눈을 딱 부릅뜨고 일본어로 말했다.
    「이승만씨, 당신을 체포하겠소. 당장 나하고 같이 갑시다.」

    긴장한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먼저 대답한 것은 질레트였다. 눈을 부릅뜬 질레트가 소리치듯 묻는다.
    「누구 지시오? 아카시 경시청장에게 확인해도 좋소? 미국 YMCA 국제위원회 직원을 체포 한다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가는 생각해보고 이러는 거요?」

    당황한 통역이 더듬거리면서 말을 끝냈을 때 대위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독립군과 내통하려고 만주로 도망친다는 첩보가 들어왔어. 바로 당신 집에서 어젯밤에 들은 정보야!」

    따라 소리친 대위가 식식거렸고 통역을 들은 내가 질레트를 보았다.
    「어젯밤 집에서 아내가 소리친 말을 감시원이 들은 것 같소.」

    내가 영어로 말했기 때문에 대위는 주먹으로 의자 팔걸이를 내려쳤다.
    「영어로 말하지 마라!」

    「무슨 말을 했단 말이오?」
    이제는 질레트가 조선어로 물었으므로 나는 입맛부터 다셨다.
    「이혼을 하자고 했더니 내가 당장 외국으로 떠나는 줄 알고 소리를 칩디다. 그것을 감시원이 말을 붙여 보고한 모양이오.」

    「갑시다.」
    벌떡 일어선 대위가 통역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소리쳤다.
    「해명은 헌병대에 가서 하라구!」
    헌병 둘이 나에게로 다가왔으므로 나는 일어섰다.

    「리, 걱정하지 마시오.」
    질레트가 위로했지만 표정은 어둡다.

    헌병들에 이끌려 복도로 나왔더니 학생들과 교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다행히 포승으로 묶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웃음 띤 얼굴로 그들을 보면서 지나쳤다.

    그 순간 문득 정기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구경꾼들에게 한놈도 분한 얼굴을 짓지 않는다고 꾸짖던 목소리다. 저도 모르게 나는 머리를 젓고는 시선을 내렸다.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내 소신만을 지켜 나가겠다. 설령 주변이 무관심하더라도 또는 배신을 하더라도 실망하거나 분개하지 않겠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가겠다. 목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선생님!」
    뒤에서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나는 머리만 돌렸다.

    사환 임군이 내 모자와 장갑을 들고 뛰어오고 있다. 내 옆에서 멈춘 임군이 모자와 장갑을 내밀면서 소리치듯 말했다.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나는 임군의 충혈된 눈에 고인 눈물을 보고는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오냐, 기다리거라.」

    17살의 임군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의병으로 죽었다.

    내 발길에 힘이 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