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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청바지 차림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미국에서 매일 출근하는 곳은 워싱턴 DC 22번가의 미 국무부가 아니다. 그의 본업(本業)은 미 매사추세츠주의 메드포드에 위치한 터프츠대 플레처 스쿨(국제 대학원) 학장이다.
그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장실에서 학교 발전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 이 학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그의 인사말을 보면 그가 얼마나 정성을 다해 커리큘럼을 만들었으며 대학원생 교육에 신경을 쓰는지를 알 수 있다.
보즈워스 대표는 지난해 2월 부업(副業)으로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맡은 후, 북한 관련 현안이 있을 때마다 국무부를 들르고 있다. 기자는 지난해 그가 플레처 스쿨 학장직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현직에 임명됐을 때 부업특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때 오바마 행정부 관계자들은 "이메일, 휴대폰을 통해 수시로 그와 현안을 논의할 것이므로 그의 역할 수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대북 문제에서 갖는 비중과 역할은 줄어들었다. 지금은 워싱턴 DC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진 누구에게 물어봐도 보즈워스 대표가 북핵 문제의 '컨트롤 타워'라는 평가가 나오지 않는다. "현안이 터질 때마다 플레처 스쿨을 잠깐 떠나서 한국과 일본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라는 비판도 나온다.
보즈워스 대표와 같은 시기에 임명된 리처드 홀브룩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별대표는 아프간 문제에서 전권(全權)을 행사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와는 달리 보즈워스 대표가 부업으로 일하는 것은 북핵 문제가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주재하는 NSC의 아프가니스탄 관련 회의는 거의 매달 개최되지만, 북핵 문제는 이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한반도 전문가들을 초청, 북핵 문제와 관련한 의견을 청취했을 때 마치 이것이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중요하게 기사화될 정도였다.
지금은 북한이 '실험용 경수로' 건설 현장에 이어 약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갖춰진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면서 3차 북핵 위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즈워스 대표가 평소 자신의 에너지를 사립대학의 발전을 위해서 쓰다가 한국에 한 번씩 다녀가는 식으로는 100년이 지나도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북핵 문제는 미국의 대북특사 시스템을 바꾼다고 즉각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보즈워스 대표는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특사와 플레처 스쿨의 학장 중에서 택일을 해야 한다. 그게 지금의 북핵 위기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시도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부업 특사에게 한반도의 운명을 맡길 수 없으며 맡겨서도 안 되는 시점에 도달했다.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