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⑮  

     「당분간 독립회 모임은 중단하기로 하지.」
    내가 말했을 때 모두 입을 다문 채 시선만 주었다.

    오늘도 7인회는 준비실에 모였다. 바깥 감시로 오늘은 윤민호가 나갔고 양성삼과 유일한 여자 회원인 서순명까지 여섯이 둘러서 있다.

    「아니, 왜 그렇습니까?」
    하고 물은 사람은 배경수다.

    눈을 치켜 뜬 배경수가 말을 이었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참인데 모임을 중단하다니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뉴욕의 국제위원회에서 연락이 왔어.」
    쓴웃음을 지은 내가 다섯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고종덕과도 시선을 마주쳤는데 똑같이 당혹한 표정이다.

    「내 행동이 보고된 모양이야. 경고가 왔는데 다시 경고를 받으면 이곳을 떠나야만 해.」
    나는 국제위원회로부터 월급을 받는 입장이었으니 그렇게 되면 다른 일을 찾아야만 한다.

    그때 최대진이 물었다.
    「그럼 당분간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 하는 것입니까?」
    「그건 모르겠어. 어쨌든 7인회는 오늘자로 해체된 것으로 하지.」

    그리고는 내가 다시 하나씩 둘러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네. 모두 이해를 해주기 바라네.」
    「이럴 수는 없습니다.」
    하고 최대진이 말했지만 양성삼이 달랬다.
    「이보게, 교장선생님 입장도 살펴 드려야 할 것 아닌가? 차분하게 기다리도록 하세.」

    양성삼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완이의 내력을 다른 회원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일본 군경은 독립군이 되겠다는 완이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준비실을 나온 내가 교장실로 돌아왔을 때 곧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고 소리쳤더니 문이 열리면서 서순명이 들어섰다.

    서순명은 정신여학교의 전신(前身)인 연동여학교(蓮洞女學校)를 졸업하고 이곳에서 여학생들에게 가사와 한글을 가르쳤는데 영어도 유창해서 질레트의 조수 역할도 했다.

    내 책상 앞으로 다가선 서순명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교장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서순명이 맑고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으므로 나는 외면했다. 거짓말을 계속해야만 하는 현실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내가 독립회에 가입할 것을 권했을 때 서순명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하겠어요. 뽑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이윽고 시선을 든 내가 머리를 저었다.
    「아니, 아무 일 없어.」
    「뉴욕에서 그런 경고가 왔다는 건 처음 들었는데요.」

    서순명이 물러나지 않았다. 질레트 일을 돕는 터라 뉴욕으로 오가는 전보는 다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똑바로 서순명을 보았다. 그렇다고 고종덕이 얽힌 사건을 말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7인회는 한마음으로 뭉친 애국 동지였다.

    「이건 질레트 총무도 모르는 일이야. 나는 특별 경고를 받았어. 그럴 정도면 다른 회원들도 다 위험하다는 증거야.」
    그리고는 내가 똑바로 서순명을 보았다. 서순명의 검은 눈동자 안에 내 상반신이 박혀져 있다.

    「서둘지 말고 몸조심을 해야 돼. 그래야 애국할 기회가 찾아 오는거야. 서둘면 일을 망치게 돼.」
    내가 해줄 말은 그것뿐이다.

    잠자코 서있던 서순명이 몸을 돌렸을 때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한성감옥서에서도 이런 압박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때는 바깥세상이 자유롭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온 세상이 감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