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재혼 부부가 돌아온 날 저녁, 네식구는 시내 일식당의 방을 빌려 귀국기념 파티겸 저녁을 먹었다.
    말이 귀국기념 파티였지 저녁상을 차리기 귀찮은 핑계일 뿐이다.

    윤상기는 고수연에게 이태리제 명품 가방과 스위스제 시계를, 박미주는 윤대현에게 시계와 스웨터를 선물로 가져왔다.

    윤대현이 대충 계산해 보았더니 고수연의 선물 가격이 제 것의 다섯배는 넘어 보였다.

    「그동안 둘이 친해졌냐?」
    윤상기가 둘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지만 건성이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이젠 넌 다 컸으니 니 일은 니가 알아서 챙기라는 표시가 난다.   

    그래서 윤대현도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럼, 세월이 약인데.」

    「열흘동안 합숙하면서 영어를 배웠다니? 영어 많이 늘었어?」
    하고 박미주가 물었으므로 윤대현이 벙글 웃었다.
    「쪼금요. 합숙소 안에서 영어만 쓰기로 했지만 잘 안지켜져요.」
    「그래도 실력은 늘어날꺼야.」
    박미주가 위로하듯 말하더니 고수연을 눈으로 가리켰다.

    「수연이가 영어 잘해. 작년 겨울에는 미국에 석달동안 가 있었어.」
    「척 보면 공부 잘하게 생겼어요.」
    윤대현이 정색하고 말했고 점점 고수연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윤상기가 회를 씹고나서 이번에는 고수연에게 말했다.
    「수연이, 너, 이번 겨울방학때 동남아여행 보내줄게.」
    「정말요?」
    굳어있던 고수연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것을 본 윤대현이 심호흡을 했을 때 윤상기가 말을 잇는다.
    「네 엄마하고도 상의했어. 하지만 배낭여행은 안된다. 단체 관광으로 묻어가는 것도 안돼. 정상적인 비행기 요금내고 호텔 숙박을 하는 여행을 해.」
    「아유, 그건 재미없는데.」
    「작년까지는 배낭여행 했다지만 이젠 너도 스타일을 바꿔봐.」
    「어쨌든 고맙습니다.」

    인사를 받은 윤상기가 흐뭇한 표정으로 윤대현을 보았다. 윤대현은 그 사이에 회를 먹고 소주를 자작으로 마셨다. 

    「넌 어떠냐?」
    불쑥 윤상기가 물었으므로 들고 있던 소주잔을 목구멍에 털어넣은 윤대현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뭐가?」
    「여행.」
    「왠 여행?」
    해놓고 윤대현이 풀석 웃었다.

    「한국에도 안가본 곳이 쌔고 쌨는데 뭐하러 비행기 타고 나가서 그 고생인지 모르겠어.」
    「이자식은 이렇다니까.」
    입맛을 다신 윤상기가 쓴웃음을 짓고 박미주를 보았다.

    「호텔 식당에서 양식 먹으면서 막걸리 찾는 놈이야.」
    「개성이 있어서 좋죠, 뭐.」
    하고 박미주가 추어주었을 때 윤대현의 시선이 고수연과 마주쳤다.

    그 순간 윤대현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고수연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웃음을 말로 표현하면 「병신 육갑하네」가 딱 맞았다.

    그때 윤상기가 말했다.
    「야, 우리 둘은 이제 남은여생을 서로 의지하고 살기로 했어. 하지만 너희 둘은 우리들의 딱 하나밖에 없는 자식들이야.」

    윤상기의 얼굴이 엄숙해졌다.
    「우리는 우리 둘만 생각하는 게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