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현은 파이터 스타일이었다. 시원스럽게 쳤다.
    서미정은 물론 고수연도 그런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러나 상대는 노련했다. 맞으면서 윤대현을 코너로 몰더니 갑자기 엉켜붙어 조르기도 들어갔다. 상대는 주짓수의 달인이었다.

    윤대현은 꼼짝달싹 못하게 되었어도 게임을 포기한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이 달려들어 풀어주었고 상대방의 승리를 선언했다. 게임은 3분이 안되었지만 둘은 숨을 죽이고 주시했다.

    「히야.」
    한숨과 함께 감탄음을 뱉으면서 서미정이 고수연을 보았다.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다.

    TV를 끈 서미정이 머리를 젓는다.
    「너네 오빠 진짜 킹카다.」

    목소리가 낮고 조심스럽다. 어느덧 꼬아올렸던 다리도 내려졌고 발가락은 얌전히 슬리퍼 안에 들어가 있다.

    집안을 살핀 서미정이 말을 잇는다.
    「너, 잘못하면 맞아 디지겠다.」
    「시꺼.」
    고수연도 낮게 말했다. 그러나 기가 죽은 표시가 역력했다.

    세상에 저자식이 K-1 선수라니. 그건 아무도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호빠 종업원에다 K-1 선수. 늙은 여자들이 환장하겠다.

    「야, 들어가자.」
    왠지 으스스해진 고수연이 말했을 때였다.

    문간방 문이 열리더니 윤대현이 나왔으므로 둘은 소스라쳤다. 서미정은 저절로 침을 삼켰고 고수연은 외면했다.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가 몸이 굳어져버린 것이다.

    「어, 너희들 나와있었구나.」
    혼잣소리처럼 말한 윤대현이 TV 앞으로 다가가더니 비디오 테이프를 빼내었다. K-1 테이프다. 

    그때 서미정이 말했다.
    「오빠, 뭐해요?」
    「뭘?」

    정색한 윤대현의 시선을 받은 서미정이 헛기침을 했다.
    「소주 한잔 마실래요?」
    「소주?」
    해놓고 윤대현의 시선이 고수연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수연은 서미정을 향해 마악 눈썹을 치켜올리는 중이었다.

    다시 서미정이 말했다.
    「한잔 마시자구요. 어때요?」
    「집에 소주는 없는데. 위스키는 있지만.」
    「그거 내놓으면 더 좋죠.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죠.」
    「고수연이 아니고?」

    웃지도 않고 물은 윤대현의 시선이 고수연에게로 또 옮겨졌다.

    「너나 마셔.」
    하고 고수연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였다.

    윤대현이 머리를 끄덕이고 말했다.
    「다음 기회에 마시는게 낫겠다. 너하고 둘이 있을 때 말야.」
    「오빤 언제 시간이 나는데요?」
    「내일부터 열흘간은 내가 좀 바빠. 일이 있거든.」
    「그럼 열흘 후에나 시간이 있어요?」

    얼굴에 실망의 기색을 띄우며 서미정이 물었을 때는 고수연이 제 방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순간이다.

    문이 닫혔을 때 윤대현이 정색하고 서미정을 보았다. 이제 거실에는 둘 뿐이다.
    「니가 와서 분위기가 좀 나아졌다.」

    윤대현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그치만 분위기 띄우려고 마음에도 없는 말 마.」
    「아냐, 오빠. 난 분위기 띄우려는 척 하면서 진심을 뱉는거야.」

    서미정이 정색하고 말을 잇는다.
    「나, 이런 경우 첨이야.」
    「아이구, 야.」

    쓴웃음을 지은 윤대현이 머리를 저었다.
    「넌 또 왜이러니? 너도 골치 아파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