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곱 번째 Lucy 이야기 ③ 
      
     나는 잠자코 앞에 앉은 60대의 최영선을 보았다.
    미국에서부터 나한테까지 그 정보를 전해주려고 날아온 것은 억만장자인 김동기씨로부터 그만한 댓가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은 60년도 넘은 후인데다 자신이 한 일도 아니다. 부담 없이 날아왔을 터였다.

    그때 최영선이 들고 온 서류봉투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이 안에 아버지의 자료가 있습니다. 작전 내용을 기록해 놓았는데 읽으시는데 지루하지 않으실 겁니다.」

    머리를 든 최영선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어느덧 얼굴의 웃음기는 사라졌다.
    「아마 이승만에 대한 오해는 많이 풀려질 것 같습니다. 이 노트를 믿는다면 말씀이죠.」
    「그럴까요?」

    건성으로 내가 대답했을 때 고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조금 전부터 고지훈은 어디가 가려운 사람처럼 부시럭대었다.    

    「저기, 부친께서는 독자적으로 이승만 박사 암살을 기획하신 겁니까?」
    하고 고지훈이 영어로 묻자 최영선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놀란 표정이다. 그러더니 서두르듯 대답한다.

    「아닙니다. 아버지는 암살 작전을 지시받은 행동 대장이었습니다. 독자적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럼 공산주의 세력의 지시를 받았단 말씀이군요. 여운형입니까?」
    「아닙니다.」

    세차게 머리를 저은 최영선이 나와 고지훈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말을 잇는다.
    「미국 정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 겁니다.」
    「미국 정부?」
    나와 고지훈이 거의 동시에 되물었다. 내 목소리는 내 귀에 비명처럼 들려졌다.

    그때 최영선이 심호흡을 하고나서 말을 이었다.
    「미 국무부 소속의 핸더슨 중령이 작전 책임자였고 한국에 주둔한 미군정청 고급장교들이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승만을 암살하려고 했단 말이지요?」

    확인하듯 고지훈이 되묻자 최영선은 의자에 등을 붙였다. 이쪽이 놀라고 서둘수록 최영선은 차분해지는 것 같다.

    최영선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제 아버지 최기태는 미군소속의 한국계, 일본계 병사 셋을 이끌고 이승만 암살 작전에 참가했습니다.」
    「그때 미군 최고책임자는 24군단 사령관 하지 장군이었죠?」
    「그렇지요.」

    머리를 끄덕인 최영선이 말을 잇는다.
    「그러나 핸더슨 중령이 하지를 만났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 모르게 그 계획이 추진되었을 리는 없지.」

    혼잣소리처럼 말했던 고지훈이 나를 보았다.
    「남한 땅에 진주한 미군 제24군단 사령관 하지는 이승만을 어떻게든 배척하려고 했지요. 그래서 1947년 7월에는 오래전에 은퇴한 서재필을 미국에서 데려와 이승만의 대역을 삼으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때 서재필은 82세였지요.」
    「왜 그랬어요?」

    영문을 모르는 내가 물었더니 고지훈이 길게 숨부터 뱉았다.
    「이승만이 신탁통치에 반대했고 미군의 좌우합작 정책에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자의 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 주둔한 미군정 당국에도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거든요.」

    나는 신탁통치, 좌우합작이란 말에 어리둥절했다. 1945년에 일본이 패망했으니 자연스럽게 독립을 찾은 것이 아닌가? 뭐가 이렇게 복잡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