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놈이 아냐.」
    고수연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서미정이 말했다. 머리를 저은 서미정이 말을 잇는다.
    「너, 좀 힘들겠다.」

    서미정은 고수연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속까지 다 털어놓는 친구다. 대학이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중요한 일은 꼭 상의했다. 커피숍에 마주앉은 둘은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다음날 오후 두시경이다.

    어젯밤 고수연은 잡채밥 특을 결국 먹지 못했다.
    그러나 아파트 정문까지 걸어가 음식 값은 내줘야 했다. 배달 나온 종업원이 안 먹더라도 음식 값은 내라고 바락바락 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트 정문까지 나갔다 왔을 때 윤대현은 소파에 등을 붙이고 앉아 TV를 보는 척 했다.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속으로는 춤을 추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 서미정이 불쑥 물었다.
    「호빠에 나간다고?」
    「응, 그 촉새 정보는 정확해.」
    「에이, 설마.」
    하면서도 서미정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돈 벌라고 그런걸까?」
    「아냐, 용돈은 제법 타. 글고 공식적으론 알바도 한다고 들었어. 즈그 아버지 공사장에서 시킨 일을 한다는거야.」
    「즈그 아버지가 뭐니? 인제 너한테도 아버지 아냐?」
    「아, 난 낯뜨거워서 그렇게 못불러.」
    「처음 만난 날 그렇게 신경 긁는게 아녔어. 쌈은 니가 먼저 건거야.」
    「야, 근다고 조개 깐다고 하는 놈이 어딨어?」

    고수연이 눈을 치켜뜨자 서미정이 큭큭 웃었다.
    「웃기네. 조개 깐다는 말 오랜만에 들어.」
    「개새끼.」
    「그래서 너, 어떻게 할거야?」

    웃음을 거둔 서미정이 물었으므로 고수연은 심호흡을 했다.
    「당분간 마음을 비우고 학교나 다녀야지. 집을 나가거나 서툴게 복수극을 벌인다면 그놈 페이스에 말려든 꼴이 될테니까 말야.」
    「내가 오늘 너거 집에 같이 갈까?」
    「응?」

    놀란 듯 정색했던 고수연이 곧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그야 괜찮지. 짐 싸갖고 와서 울 엄마 올 때까정 우리집에서 살지 않을래?」
    「그 친구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
    「말도 안돼.」

    머리를 저은 고수연이 선언했다.
    「나는 그 집의 절반을 사용할 권리가 있어. 그 자식은 가타부타 할 자격이 없다구.」
    고수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그날 오후 6시경이 되었을 때 고수연과 서미정은 아파트로 들어선다.

    집에는 윤대현이 와 있었는데 벌써 저녁을 챙겨 먹었는지 개숫대에서 설거지를 하는 중이다.

    인기척에 머리만 돌린 윤대현의 시선이 서미정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저 수연이 친구에요.」
    서미정이 머리까지 까닥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얼굴에는 웃음기도 떠올라 있다.

    서미정이 말을 잇는다.
    「저, 며칠 수연이하고 같이 지내도 될까요? 귀찮게 해드리지 않을게요.」
    「어. 잘왔어.」

    씻던 그릇을 내려놓은 윤대현이 몸을 돌려 똑바로 서미정을 보았다. 윤대현도 웃음 띤 얼굴이다.
    「저 봐. 웃는 모습이 참 자연스럽고 좋네. 자주 웃는 사람들은 저렇게 표시가 나.」

    윤대현이 감탄 한 표정을 짓고 말을 잇는다.
    「착하게 산 증거야. 아주 대조가 되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