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9.28당대표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김정은 후계구도 공식화에 초점이 맞춰진 일종의 정치적 이벤트였다. 그런 행사의 성격을 가장 극명히 보여준 대목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64.당 경공업 부장)의 급부상이었다.

    군 경력이 전혀 없는 김경희는 당대표자회 전날 김정은과 함께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은 데 이어 당대표자회에서는 원래의 당 경공업부장보다 훨씬 비중이 높은 정치국 위원 감투를 추가했다.

    그동안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위세를 떨친 남편 장성택(국방위 부위원장 겸 당 행정부장)에 비해 한참 처졌던 김경희의 위상이 일거에 대등한 수준으로 격상된 셈이다.

    김경희의 이런 도약을 놓고,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에서 김정은한테 서둘러 권력을 물려줘야 하는 김 위원장으로서는 그래도 가장 믿을 수 있는 `혈육'을 아들 옆에 앉혀 놓은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은 후계체제의 핵심 실세로 떠오른 김경희지만 작년 6월 이전에는 대외적으로 거의 숨겨진 존재였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장례식과 1997년 3주기 추모대회, 2000년 10월 당창건 55주년 열병식, 2003년 최고인민회의 제11기 1차회의 때 정도만 간헐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뿐 공식활동을 전혀 하지 않다가 작년 6월 당 경공업부장으로 갑자기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은둔 기간 김경희는 심한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 장기간 치료를 받았다는 설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확인된 사실은 전혀 없다.

    하지만 현재 김경희에 대한 김 위원장의 신임은 거의 절대적인 것 같다.

    일례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달 29일 일본의 대북 정보통인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의 저서 내용을 인용, "김정일 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김경희는 곧 나 자신이므로 김경희의 말은 곧 나의 말이요, 김경희의 지시는 곧 나의 지시'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젊은 시절부터 김 위원장과 김경희 사이의 우애는 매우 끈끈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김 위원장이 이혼녀였던 성혜림한테 빠져 첫째 아들 김정남을 낳았을 때 김일성 주석이 눈치 채지 못하게 숨겨준 사람이 바로 김경희였다는 것이다. 반대로 김 주석의 완강한 반대로 김경희가 연인 장성택과 떨어져 어려워할 때 김 위원장이 중간에서 도와줘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했다는 소문도 거의 사실처럼 떠돌았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당 부장으로서 공식활동을 시작한 이후 김경희의 동선을 보면 김 위원장을 거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 같다.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시찰)나 외부 공개활동을 나갈 때면 거의 어김없이 김경희가 수행할 정도다.

    실제로 김경희는 올 상반기 6개월간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77회 중 56회를 수행해 당.군.정의 고위 간부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김경희는 또 이달 23일까지 총 107회의 현지지도 중 무려 74회(69%)를 따라다녔다.

    이런 정황을 종합할 때 김 위원장은 가장 믿을 수 있는 `혈육' 김경희한테 김정은 후계구축의 한 축을 맡긴 것이 분명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약간 포인트는 다르지만 그동안 장성택한테 너무 기울어진 듯했던 힘의 균형추를 김경희 쪽으로 맞추려는 김 위원장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그럴듯하게 제기된다.

    향후 김정은 후계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김경희ㆍ장성택 부부가 항시 협력 관계에 있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견제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김경희의 성격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김정일 위원장의 처조카인 고 이한영씨가 탈북해 쓴 책을 보면 김경희의 성정을 짐작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1960년대 후반 김일성대학교 정치경제학부에 다닐 때 장성택과 사랑에 빠진 김경희는, 교제에 반대한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장성택이 강원도 원산까지 쫓겨가자 주말마다 김 주석 차를 몰고 내려가 밀린 빨래를 해주고 올라올 정도로 성격이 대차고 고집도 세다고 한다.

    13년간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한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가명)씨는 회고록에서 "김경희는 양주를 와인 마시듯이 들이키곤 했는데 술주정을 부릴 때면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강한 면이 있는가 하면 여성 특유의 섬세함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김 위원장이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한테 빠져 있을 때 김경희는 본처 성혜림을 모스크바로 보내고 김 위원장의 자녀들을 돌보며 집안 대소사를 꼼꼼히 챙겼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성격이 강하고 카리스마도 갖춘 김경희가 조카 김정은을 돕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권력을 잡으려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고이케 유리코 전 일본 방위상은 9월1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실린 기고문에서 "김정은은 아직 어리고 경험도 부족해, 작년 6월부터 김 위원장의 현장지도에 거의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김경희가 스스로 후계자가 되려는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확정되기 전까지 김경희ㆍ장성택 부부는 첫째 아들 김정남과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본의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작년 1월 미국 내 정보소식통을 인용, 이들 부부가 김정남을 앞세워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