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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8 서울 수복 퍼레이드는 좋았다. 그 행사가 기념하는 것이야말로 60년이 지나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이 나라의 기억이다. 아울러 이 행사는 그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한 것이 없는 이 나라의 안보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왜, 국군의 날 행사는 이러한 기억과 현실에 조금도 걸맞지 않게 계룡대 한쪽 구석에서 행해져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프랑스 혁명기념일(바스티유의 날)과 비교해보자. 그날 프랑스군은 대통령의 임석 하에 샹제리제를 행진한다. 이를 보고 프랑스 국민들은 영광과 오욕이 교차했던 프랑스의 국방사를 되새긴다. 유럽통합이 이루어졌어도 그렇게 하고 있다.우리의 현실은 이에 비해 여전히 초라하다. 고위층의 병역문제가 청문회의 단골메뉴이다. 이러한 모습은 통일과 자주국방을 외치는 나라 자체를 온통 허구의 나라로 만들고 있다. 대개 병역기피를 숨기고 있고 병역면제에 갖가지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알고 있다. 또한 앞 세대(6.25참전세대)는 더욱 기가 찰 것이다. 5, 60, 70년대의 우리 병무행정은 징집 위주였다. “국방자원의 확충”위주였던 것이다.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그때는 한 번의 신체검사로 끝나는 그러한 시대가 아니었다. 거기서 탈락하면 학업과 직업의 성취도,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어렵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런 만큼 차등시니 뭐니하는 갖가지 친절한 ‘의학적 소견’에 의해 병역면제가 결정되고 간단히 그 문제가 넘어갔다는 주장에 대해서 그 시대를 같이 살아온 사람들이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상당기간의 ‘기피’ 이유에 대해 어머니가 소집영장을 읽지 못하시는 ‘문맹’이었다고 이유를 내세운 실례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면제된 사람들의 상당수가 수십 년이 지나서 고위직에 오르거나 청문회의 대상이 될 만큼 중요한 고위직의 후보자가 되어 나타났다. 그런 고위직들이 국방발전, 강군을 역설할 때에 누가 그 진정성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고위직들이 무슨 감각으로 천안함 최초보고를 접수했는지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고 조치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또한 무슨 생각과 자신이 있어 공정사회를 역설하는지에 대해서도 의아해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병역문제를 매번 지적받으면서도 도대체 번번이 ‘쇠귀에 경읽기’가 되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접할 때에는 정말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신임 국무총리후보가 가수 MC. 몽과 비교되는 마당에 ‘그럼 눈이라도 찌르라는 말이냐’는 청와대 관계자의 무지막지하고 무신경한 반응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아연할 뿐이다. 더더욱 괴이한 것은 헌법사항인 국방의무의 위배여부를 두고 마치 ‘신종플루’ 대책처럼 청문회나 천안함 문제를 다룰 때에만 법석을 떨다가 청문회가 지나면 이내 숙지막 해지는 현실이다. 즉 병인(病因)이 규명되는 것이 아니라 법석대는 것만 숙지막 해지는 것이다.당연히 집중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추구해야할 병인 규명과 박멸이 일회성이고 단속적(斷續的)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 문제가 개개인의 도덕적 문제를 뛰어넘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합성되어 있다.
하나는 이미 청문회마다 드러났지만, 이 정권을 포함, 이 사회의 중추세력이 병역기피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관계, 재계, 언론계가 각각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중추세력이 병역기피자들인 이상 병역의 문제화를 가능하면 회피하려하거나, 단기화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들 자신이 문제 자체의 심각성에 둔감하기도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사회의 둔감화에도 기대하는 것이다. 언론의 경우, 아마도 방송시장의 문제로 영향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물론 극소수의 논자는 개인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또 하나는 병역문제가 좌우대결이 일상화된 이 사회에서 유일하게 ‘좌우합작’이 이루어지 지고 있는 아주 희귀한 케이스라는 점이다. 물론 이 합작은 상호간의 의도적인 협조 하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이해와 이데올로기에 입각하다보니 결과적으로 무언의 ‘결탁’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른바 진보세력은 이데올로기적 이유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보니 극도의 혐군(嫌軍)사상에 빠져있다. 이른바 진보언론이 병역문제를 별로 취급하지 않거나 부각시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쪽에서는 병역회피자가 ‘출세’를 완료한 뒤에 문제의 사회적 둔감화를 시도하고, 또 한쪽은 문제 자체의 집중화를 회피하는 양상이다. 좌우대결에서는 문제점이라도 부각되지만 좌우합작에서는 문제점이 증발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회구조가 국민들에게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늦긴 했지만 모두의 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철 객원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