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학”에 대한 기대


       ‘석학’은 학자라면 누구나 얻고 싶어 하는 칭호이다. 그리고 우리는 고위공직자보다 석학을 만날 때 더 긴장하고 기대한다. 폭 넓고 심오한 학문의 세계, 무르익은 인생에 대한 성찰, 그리고 그와 함께 고매해졌을 인격과 너그러운 심성…

       이제껏 노엄 촘스키나 에드워드 사이드 등 몇 저명 석학의 강연을 들어 보았지만 최근에 어느 재단의 의뢰를 받아서 직접 한 세계적 석학을 초청해서 모든 일정을 준비하고 보살피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대에 부풀었다.

  • ▲ 서지문 교수
    ▲ 서지문 교수

       이 재단의 인력으로는 이 업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고려대학교 영미문화연구소와 영어영문학과에 주관을 의뢰해서 연구소장과 학과장, 그리고 외국에서 학위를 하고 돌아와서 강사를 하고 있는 두 소장학자와 함께 준비를 하게 되었다. 초청강연에서 가장 중요한 초청연사는 영문학자로 출발해서 문학, 문화이론가, 문명비평가로 세계적인 명성과 업적을 이룬 한 영국국적의 저명 학자를 초청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재단이 요구하는 강좌의 의도라던가 조건 등을 자세하고 정확히 알리기 위해 자연히 내가 초기 섭외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중요한 사안은 내가 연락하고 확인하게 되었다. 외국의 석학들은 대략 희망강연일자 1년 이상 전에 초청을 해야 승낙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석학은 이메일을 쓰지 않는 관계로 연락이 어려워 올해 초에야 초청장을 전달할 수 있었다.

       초청의 조건은 강연료 1만 불과 비즈니스 클래스의 왕복항공권 제공, 그리고 체제비용전액 부담의 대가로 3번의 공개강연을 해야 하고 강연원고는 사전에 보내서 강연당일 번역문과 함께 인쇄해서 배포하고, 강연의 동영상을 촬영해서 재단의 홈페이지에 상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3번의 강연원고를 쓰는 것이 힘들 것 같고, 또 그냥 강연만 하기보다 한국학자들과 학문적인 대화,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재단과 협의해서 3번의 공개강연을 2번 공개강연과 유관학자들과의 라운드테이블로 변경했다. 조건이 좋아서인지 흔쾌히 초청을 수락하겠다는 답이 왔고, 방한일자는 9월 초가 가능하다고 해서 9월 초로 행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original”의 독자적 용법

       그런데 주최 측의 요구사항 중에 강연이 오리지날한 것이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내가 무의식적으로 1만 불이나 받는 강연이라면 의당 새로운 원고를 써갖고 와서 강연할 것으로 생각해서인지 초청장에 언급하는 것을 잊었다. 수락하는 답을 받고나서 그 사실을 깨닫고 급히, 당연히 새 원고를 준비할 것으로 믿지만 주최기관의 초청 조건이어서 확인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강연원고가 오리지날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당신이 이제껏 저술한 40여권의 저서에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그런 전혀 새로운 내용일 수는 없겠지만 실질적으로 새로운 내용이어야 (substantially new) 한다는 것을 밝혔다.

       이에 대해 그는 “나는 내 낡은 저서의 일부를 갖고 강연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내 강연은 물론 오리지널할 것이다(my lectures will of course be original)”라고 답했다. 내가 얼마나 안심이 되고 고마웠겠는가.

       한 사람 초청강사의 강연을 조직하는데 그리 엄청난 품이 드는 줄은 정말 몰랐는데, 항공권 구매, 숙소 예약, 강연장 물색 예약, 만찬장 물색 예약, 포스터, 현수막, 강연안내 문안과 도안 선택 등 일이 한도 끝도 없었다. 게다가 그가 받을 강연료에 대해 세금이 부과되지 않도록 그가 취업비자를 받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 그와 연락을 하고 주영대사관에도 수차 국제전화로 그의 서류가 가면 좀 신속하게 비자를 발급해서 반송해 주라고 부탁을 하는 등, 예상치 못했던 일도 참으로 많았다.

       그는 여러모로 신경 써 주어서 고맙다는 답도 보내고 강연원고를 요청한 날짜보다 일찍 보냈다. 그런데 경악스럽게도 두 편의 원고가 모두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떠도는 그의 미국, 영국 등지에서의 강연과 한 단어도 다르지 않는 동일한 원고였다. 다만 한 군데, 이전 강연에서 후진국의 예로 들었던 어느 아프리카 국가의 이름을 한국으로 바꿨을 뿐이었다. 한국청중에게 친밀감을 보이기 위한 배려(?)였을까?

       경악하고 분노했지만, 이미 예고가 되어서 취소할 수 없는 시점에서 꾸짖고 비난을 할 수는 없기에 그가 자기 강연은 물론 오리지널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상기시키고, 나는 다만 주최 측의 규정에 따라 시행을 하는 사람이므로 새로운 원고를 써 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수 없음을 호소(?)했다. 그는 매우 불쾌한 어조로 자기가 오리지널할 것이라고 한 것은 기간(旣刊) 자기 저서의 한 챕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면서 새로 써 보내겠지만 우리가 요구했던 기일보다 늦어지더라도 할 수 없다는 답이 왔다. 아무려면 이곳저곳에서 했던 강연을 재탕하면서 기 출판된 책의 일부만 아니면 ‘original’한 강의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그가 ‘origianl’이라는 단어의 뜻을 그렇게 이해하고 사용했기 때문이었을 수는 없다. 사단은 그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강연의 동영상이 수 십 개 인터넷에 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미국이나 영국에서 했던 강연을 후진국인 한국인들이 어찌 알랴하는 생각에 시도한 속임수였음이 틀림없다.

    지혜가 머릿속에만 머무는 석학

       그리고 한 편의 원고가 왔고, 그것은 그가 2년 전에 출간한 어느 저서의 핵심개념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새로 집필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좀 늦게 또 한 편의 원고가 왔는데, 앞부분에서는 개념과 정의의 문제를 다룬 어느 정도 학술적인 내용이지만 뒷부분은 다분히 학부생 수준의 단순한 내용이고, 사실 두 원고가 다 약 30분이면 읽을 만한 분량이었다. 대부분 외국인 강연자들은 원고 중간 중간에 농담도 하고 부연설명도 해서 30분 원고로 50분 정도씩 강연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동시통역사가 문학이론이나 용어에 정통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강연만이라도 풀 텍스트가 있으면 전달이 훨씬 잘 되겠어서 원고를 좀 확대를 해 줄 수 없느냐고 매우 사정조의 편지를 보냈다. 그의 반응은 “나는 늘 그 분량의 원고로 한 시간의 강연을 했고, 너의 요구가 지겨워서 한국방문을 취소하고 싶을 지경이다”는 것이었다. 내 편에서도 물론 초청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든 것이 아니었지만 그가 안 와서 강연이 무산된다면 낭패 정도가 아니라 재앙일 수밖에 없으므로 더 이상의 요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가 한국에 대한 일말의 관심이나 기대도 없이 순전히 강연료 때문에 초청을 수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그가 안 올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의 강연은 다행히 매우 성공적이었다. 강연을 수십 년 해 본 (그리고 자기 말대로 요즈음은 은퇴하고 여기저기 강연 다니면서 먹고사는) 사람답게 강연 후에 수많은 청중의 질문에 성의있게 대답해 주었고, 피곤한 가운데도 기자간담회는 물론 단독기자회견에도 응해 주었다. 그에게 인간적인 실망은 있었지만 강연을 잘 해주어서 고마웠고 매우 특별한 손님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불안한 일이 없도록 매 시간 체크를 하며 보살폈다.

       그런데 그는 서울에 있는 동안 내내 나를 피하고 싶은 눈치였다. 옆에 앉게 되면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기도 했지만 때때로 싫은 기색을 드러냈다. 그래도 (중병을 앓은 일이 있는 듯 쉽게 피곤해 하면서도) 강연을 열심히 하고 청중의 질문도 잘 받아준 것만도 고맙고, 또 그의 자서전을 보면 자기가 만난 거의 모든 사람을 격하하고 비하하고 있어서, 혹시라도 나로 인해 감정이 상해서 앞으로 책에서나 언론매체 기고에서 한국을 비방할까봐서 그의 귀국길에 공항에 동행하면서, “너를 불쾌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했다는 것을 이해하겠지?” 하고 물었더니 “이 세상에 강연을 매번 새 원고를 써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면서 “너 때문에 기분이 나빠 안 오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좋은 말로 “내가 칸트(Kant)적인 의무감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그런 사람은 영원히 사람들에게 혐오를 받고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다”면서 “강연은 내가 너보다 훨씬 더 많이 해 봤고 네가 일생해도 나만큼은 못 할텐데 네가 내게 강연에 대해 이런저런 주문을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그래도 그냥 사소한 이야기를 가끔 나누며 공항까지 갔는데 가는 길에 내가 특별히 빌린 차에 조수미의 오페라아리아 CD를 틀어 주었더니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고 가끔 흥얼흥얼 따라하면서 매우 즐기는 듯 했다. 그래서 원래 의도대로 나중에 공항에서 그 CD를 선물로 건넸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받는데, 혹시 그가 선물을 받는 것을 쑥스러워할까봐 “(12살 난) 아들 갖다 주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지더니, “네가 너희 학과장을 못 나오게 하고 네가 공항에 따라온 것은 네가 직급이 높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을 하고 들어가 버렸다. 아마 그 석학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아들에게 주라는 것이 몹시 불쾌하고, 자기를 공항까지 환송하는 드높은 영광은 최고위인사만이 누리는 것으로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을 매우 빈곤한 가운데 보낸 이 석학의 저서 행간에는 권력자에 대한 심한 증오가 배어나오는데, 감히 자기에게 강연 원고를 새로 써야한다고 요구를 하는 내가 대단한 권력자로 보였던 모양이라고 해석하며 혼자 쓴 웃음을 지었다.

       이론적, 관념적 차원에서 심오한 논리와 눈부신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 학자, 사상가, 이론가가 자신의 그 훌륭한 식견의 혜택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석학은 되지 못하더라도 석학보다 더 나은 상식인이 될 수 있다는 각성이 그 크나큰 실망에 대한 조금의 위안이 될 수도 있을까?
    <서지문 /고려대 영어영문과 교수>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포커스 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