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끝없는 도전 (30)

     웨스턴 홈의 현관에 들어선 나는 앞에 선 머피 부인을 향해 웃어 보였다.
    미안함과 감사가 배어난 웃음이었으리라.

    「부인,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
    먼저 내가 말했고 옆에 선 보이드 부인이 이었다.
    「고생했어요. 태산이는 어디 있지요? 아직 자고 있나요?」

    그때 머피 부인이 눈을 치켜뜨더니 주춤 한걸음 물러선 것 같다. 나는 그때서야 머피 부인이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창백한 얼굴, 눈동자의 초점도 잡혀있지 않다.

    내가 한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부인, 피곤해 보이십니다. 태산이를 잠깐 봐도 될까요?」

    그때 머피 부인이 손을 뻗어 옆쪽 탁자를 짚었다. 그러더니 묻는다.
    「그럼 모르고 여기 오신 겁니까?」
    「시립병원에 갔더니 부인이 태산이를 데리고 갔다고 해서.」
    대답은 보이드 부인이 했다. 나는 갑자기 숨이 막혀서 시선만 보내고 있었으니까.

    그때 머피 부인의 말이 먼 곳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어제 저녁 7시에 태산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시신을 영안실에 두고 온 겁니다.」

    현관 안쪽 로비는 한동안 정적에 덮여졌다.
    내 귀에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머피 부인을 향하고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보이드 부인도 머피 부인도 그랬다.

    그러다 먼저 정적을 깨뜨린 것이 보이드 부인이다.
    「아아, 신이어, 신이어, 그 불쌍한 어린 것이. 아아, 도우소서, 도우소서.」
    아마 그렇게 혼잣소리를 한 것 같다.

    그 다음 순간 머피 부인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흐느껴 울었다.
    「태산이가 죽기 전에 아빠를 그렇게 찾았다네요.」
    머피 부인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그래서 자신을, 그리고 아비인 나까지 자책하고 원망하는 것 같았다.

    「간호사한테 들었어요. 더듬거리는 영어로 아빠는 워싱턴에 있으니까 빨리 데려와 달라고 수없이 졸랐다네요.」
    이제 보이드 부인은 소리 내어 운다. 머피 부인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죽기 전에 눈을 감으면서 아빠를 똑똑하게 불렀다는군요. 아버지, 맞지요?」
    하고 머피 부인이 조선말로 「아버지」를 분명하게 발음하며 물었으므로 나는 머리를 들었다.

    머피 부인의 시선을 받은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아버지는 조선말로 아빠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연거푸 부르다가 웃음 띤 얼굴로 눈을 감았답니다.」
    「아아, 신이어. 그 불쌍한 어린 것을 도와주소서.」

    흐느끼며 보이드 부인이 소리쳤을 때 내가 물었다.
    「태산이 어디 있습니까?」
    「영안실에.」

    머리를 끄덕여 보인 내가 몸을 돌렸을 때 머피 부인이 서둘러 말했다.
    「태산이는 전염병으로 죽어서 아마 오늘 아침에 가매장 했을 겁니다.」
    「......」
    「리, 어쩔 수 없어요. 태산의 시신은 보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나는 다시 머피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아버지」, 태산의 여린 목소리가 자꾸 귓속을 울리고 있다. 「아버지」「아버지」「아버지」「아버지」 머리를 흔들어 보았지만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머리를 들고 빙그레 웃었다.
    그래, 태산아. 사라지지 말거라. 남아있어다오. 내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