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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상위의 빈자리를 채워 준 활동죄수 옹바오
구상위가 내 곁은 떠남으로써 생긴 마음 속의 빈자리를 어느정도 채워주는 것은 경비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활동죄수 옹바오의 존재였다.
구상위와 옹바오는 성격면에서나 계급 신분면에서나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국 만 리 적대국 형무소 격리 감방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허덕이는 병들고 쇠약한 나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나 뿐이었다.
옹바오의 경력은 좀 복잡했다. 그는 북월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하여 군에 징집되어 육군의 전사(이등병)가 되었다. 해가 거듭되면서 진급을 계속하여 육군 상사가 되었을 때, 그의 소속부대는 북위 17도 선을 넘어 1972년 남월로 침공하였다. 남월군과 전투중 소속부대는 패배하고 그는 포로가 되었다.
옹바오는 남월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남월의 실상을 알게되자 마음이 달라졌다.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되고 포로 교환이 이루어질 때, 그는 북월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남월에서 살게 됐다. 그로부터 약 2년 후인 1975년 4월 30일, 남월이 패망하자 그는 북월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치화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형무소에서 활동죄수가 된 그는 식사운반 및 분배, 채소밭 가꾸기, 기타 잡역을 하며 간수들의 손발이 되어 일을 했다. 체포 수감된 후 약 1년반 동안, 나는 거의 대부분 옹바오가 퍼주는 밥과 국을 먹었다. 형무소 격리감방에서의 배식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하루 식사는 두끼이며, 식사시간이 되면 활동 죄수 두 명이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양푼같은 밥통과 국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와서 1호 감방 앞 복도에 덜컹 내려놓는다. 활동죄수 한 명이 열쇠로 1호 감방 문을 열면, 감방에 있는 수감자가 알루미늄 밥 그릇과 국 그릇을 양손에 한개씩 들고 나가서 허리를 구부리고 내민다. 그러면 밥통과 국통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활동죄수가 밥을 푸고 국을 떠서 수감자 그릇에 담아준다.
이때 허기진 수감자 대부분이 “한술 더 퍼주십시오”하고 애원한다. 복도를 가로지른 철책 문 저쪽에서 배식을 감시하는 간수에게 들리지 않도록 모깃소리로 속삭이던가, 아니면 밥 그릇이나 국 그릇을 한 번 더 살짝 활동죄수 앞으로 내밀면서 눈짓으로 사정을 한다. 그러면 활동죄수가 밥이나 국을 한 두 숟가락 덤으로 줄 때가 있다. 나는 아무리 허기지고 굶어 죽어 갈 지경이 되어도 그런 구걸 행각은 꿈에서 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활동죄수가 퍼주는 대로 순순히 받아서 감방안으로 되돌아갔다. 옹바오는 나와 접촉하면서 일 년이 가까워오자, 내 사람됨을 꿰뚫어본 것 같았다. 그는 그때부터 나를 퍽 호의적으로 대했다. 취사장에서 누룽지를 얻어다가 손바닥 크기의 누룽지 두서너개를 식사분배 때 슬그머니 내 밥그릇 밥 위에 얹어주는 일이 한 달에 두서너번씩 있었다. 나는 이 귀중한 식품을 방안에 감추어 저장해 두고, 허기가 극심할 때마다 조금씩 뜯어서 입안에 넣고 풀이 될 때까지 오랫동안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겼다.
하루는 곰팡이 냄새가 많이 나서 저장해 두었던 누룽지 두 장을 물로 씻고 있는데, 때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경비원 한 명이 열린 쪽문을 통해 이를 목격했다. 심성이 곱지 않은 그 경비원은 이 사실을 A동 구대장에게 고자질했다. 성미가 급한 A동 구대장이 경비원 두 명을 데리고 와서 A동 4층의 모든 감방을 샅샅이 수색했다. 우리 감방에서 물기가 마르지 않은 곰팡이를 씻어낸 누룽지 두 장이 나왔다. A동 구대장인 경찰대위는 그것을 압수해 가지고 가서 옹바오 등 식사운반 및 분배활동 죄수들을 세워놓고 나무랐다. 그 이후 나에게 누룽지를 주는 사람은 없어졌다.
◆ 옹바오가 전해 준 토마토 네개
1977년 3월 11일, 그 성질 급한 A동 구대장이 옹바오를 대동하고 나를 인솔하여 일광욕 장소로 나갔다. 머리가 반쯤 센 이 경찰 대위는 볼 일이 좀 있다면서, 정해진 일광욕 시간이 끝나면 나를 감방으로 인솔하라고 옹바오에게 지시한 뒤 일광욕 현장을 떠났다. 이날의 일광욕 장소는 옹바오가 가꾸는 토마토 밭의 가장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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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바오는 둥글고 가무잡잡하고 넙적한 얼굴에 눈썹이 검고 짙었다. 키는 베트남 사람으로서는 약간 큰편이었다. 말수가 적어서 묻는 것 이외에는 별로 말이 없었지만, 토마토 밭 옆에서 이날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옹바오는 집이 가난해서 차입품을 전혀 못 받는 딱한 처지라 이렇게 형무소 토마토 밭을 가꿔주면서 노동의 대가로 가끔 토마토 몇 개씩을 얻어 먹는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할 때, 옹바오의 입언저리와 눈언저리에는 없는 자의 비애가 감돌아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살피더니 토마토 네개를 따서 먹으라고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야 옳은지 거절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더니, 그가 빨리 받으라고 재촉했다. 이 토마토 밭은 자기가 가꾸어 왔으므로 이만한 권리는 있으니 받아도 된다면서, 내 병을 치료해 주는 약이라고 했다. 망설이던 나는 구세주가 베푸는 약이라 생각하고 계란 크기의 토마토 네개를 받아서 땅 위에 벗어놓은 반바지 양복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일광욕 시간은 감방까지의 왕복시간을 포함해서 15분간이었다. 그러나 옹바오는 이제 한 시간을 이미 5분이상 넘기고 있었다. 내가 옹바오에게 일광욕 시간이 초과되었을 테니 감방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는 “홍꼬싸우(=괜찮아요), 홍꼬싸우!”하면서 걱정할 것 없다고 머리를 저었다. 그 말이 끝나고 불과 20초나 됐을까, A동 구대장이 사라진 방향으로부터 역정을 내는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A동 구대장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야, 바오야. 이놈아! 너 지금 무슨 짓 하고 있는 거야. 일광욕 시간을 왜 안지키는거야. 당장 끝내고 감방으로 데려가지 못 해!”
“예, 알겠습니다. 구대장님“하고 옹바오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호주머니 속의 토마토가 굴러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양복바지를 주워 입고 양손을 바지 양쪽 호주머니 속에 넣은 후, 토마토를 꽉 잡고 옹바오의 호위 하에 감방을 향해 걸어갔다.
옆에 서있는 A동 구대장인 북월 출신 늙은 경찰대위는 악질은 결코 아니었으나, 성질이 급한데다가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어 수감자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내 호주머니 속에 넣은 두 손의 의미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내가 지나가는 것을 말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토마토 네 개를 감방 안에 숨겨놓고 요긴한 약으로 아껴 먹었다. 옹바오는 그 후에도 간수가 자리를 비우면, 또 토마토 네개를 따서 땅 위에 벗어 놓은 내 양복바지 호주머니에 자기가 직접 넣어주는 일을 두 번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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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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