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4월 11일 오후 2시 반경, 안닝노이찡 광대뼈 보좌관인 경찰중위 두 명이 한국인 세 명에 대한 석방 명령서를 가지고 우리 감방에 와서 읽어 주었다. 나에대한 석방 명령서는 002번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우선 시내의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편히 쉬게 하다가 본국으로 송환시킨다고 했으며, 그동안 그들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고 했다. 우리 세 명은 초라한 짐 보따리를 들고 그들을 따라 형무소 ED동 구대본부 앞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는 마이크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시동을 걸고 형무소 내부 순환도로를 달려 형무소 문을 빠져나갔다.

  • ▲ 서울대학병원에서 가족들과의 상면한 이대용 전 주월공사 ⓒ 뉴데일리
    ▲ 서울대학병원에서 가족들과의 상면한 이대용 전 주월공사 ⓒ 뉴데일리

    아! 저 A동, 저 D동...... 가슴을 에는 아픔 없이는 바라보지 못할 붉은 나의 옛 집. 이제는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구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기쁨의 눈물이건 슬픔의 눈물이건 안닝노이찡 경찰들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으리라. 우리는 옌도가와 쭝민장가 교차점 부근에 있는 베트남 정부 귀빈 숙소로 안내되어 거기서 하룻밤을 보내며 좋은 대우를 받았다.

    1980년 4월 12일, 날씨는 쾌청했다. 오후 0시 30분경, 스웨덴 리프랜드 외무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고, 닐슨 외무부 비서실장과 아이젠버그 그룹의 주재 이사겸 하노이 지사장을 겸무하는 그윌크 맨을 단원으로 하는 ‘한국외교관 인수 대표단’이 베트남 외무부 홍 과장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 숙소에 도착했다. 아이젠버그 그룹의 그윌크 맨 지사장이 상의 안주머니에서 백색 봉투를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봉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李大鎔公使貴下
    TO : MINISTER RHEE DAI YONG.
    그리고 봉투 뒷면에는 발신인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고, 다음과 같이 쓴 종이가 덮여있었다.
    * Please give this letter directly to Minister Rhee Dai Yong, in any case, not to the others.

    나는 편지를 개봉하고 내용을 읽었다. 편지 내용은 이 편지 가지고 가는 분들은 한국외교관 세 명을 베트남 정부로부터 인수하여 서울로 데리고 오는 대표단이며, 그 대표단의 성명과 직책은 이러이러한 분들이니 안심하고 이분들과 함께, 대표단이 타고 간 전세항공기에 탑승하여 귀국하라는 것이었다.

    베트남 외무부 홍 과장의 안내로 두 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탄 대표단과 외교관 세 명은 베트남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호치민 탄산눌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공항에는 대표단이 타고 온 오스트리아 국적의 제트항공기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이젠버그 회장의 개인 전용기였다. 오후 1시 20분경, 우리를 태운 육중한 제트 항공기가 엔진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서서히 굴러가던 항공기는 소리를 더 내며 활주로를 달리다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아, 베트남 땅을 떠나는 구나!

    옥중의 기나긴 한 많은 세월 속에서, 김정일의 3호청사 일당들로부터 당한 갖가지 단장(斷腸)의 기억들이 활동사진같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흘러간 악연의 과거지사. 누구도 더는 원망하지 않으리라.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마음의 상처도, 처절하고 고독하게 버텨야 했던 혼자만의 전쟁도, 김정일과의 질곡 속에서 겪었던 고통의 잔독(殘毒)도, 제트항공기의 이륙과 함께 기음(機音) 속에 묻혀 멀리멀리 사라져가고 있었다.

    자유조국이 고마웠다. 헤어나지 못하고 허덕이던 복마전의 수렁에서 나를 이렇게 구출해 주는구나. 백골난망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대표단도 고마웠다. 모두가 감사하다. 몇 해를 두고두고 가뭄의 사막처럼 메말랐던 내 두 눈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있었다.

     

  • ▲ 서울대학병원에서 가족들과의 상면한 이대용 전 주월공사 ⓒ 뉴데일리

    <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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