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번째 Lucy 이야기 ③ 

     행사 요원이었지만 큰 역할이 아니다. 안내를 하거나 어제는 두군데 임시 분향소 관리를 맡았지만 대체 인력은 얼마든지 있다.

    오후 3시 반, 김태수는 소공동 길가의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이제 서울은 텅 빈 느낌이 든다.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봉하마을로 떠났기 때문이다. 김태수는 그곳까지 따라가지는 않았다.

    「많이 기다렸습니까?」
    안쪽 자리에서 일어선 사내 앞자리에 앉으면서 김태수가 물었다.
    「아닙니다. 방금 왔습니다.」
    30대 후반쯤의 사내가 표정 없는 얼굴로 말하더니 김태수를 우두커니 보았다.

    사내는 용역회사 직원으로 이틀 전 김태수로부터 일을 맡았다.
    이윽고 김태수가 입을 열었다.
    「오전에 전화했더니 안면도에 갔다고 하던데요.」
    「예. 안내한 사람은 고지훈이라고 극동대학 역사학과 조교수더군요.」

    김태수는 시선만 주었고 사내는 말을 이었다.
    「루시양이 시장조사를 맡긴 고영훈씨 사촌동생입니다.」
    「그렇군.」
    「그리고...」

    사내가 탁자 위에 놓인 종이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놓았다.
    「루시양한테 배달 된 서류 겉봉의 주소를 확인했더니 미국 LA의 김동기란 사람이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여기 겉봉 복사본과 김동기의 주소, 사업 내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자가 왜 그 서류를 루시한테 보낸 겁니까?」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

    머리를 저은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 서류를 빼돌리거나 복사 하기는 불가능했습니다. VIP 택배의 경비는 은행 현금 수송보다 더 철저해서요.」

    김태수는 길게 숨을 뱉는다. 사내에게 이승만의 수기를 복사하거나 빼돌려 보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루시가 왜 이승만 수기를 받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수기 내용은 더 궁금했다. 루시는 나중에 보여준다고 해놓고 내놓을 기색이 아니다.

    머리를 든 김태수가 말했다.
    「저기, 루시와 이승만과의 관계를 알아낸 건 없습니까?」
    「그건 힘듭니다.」

    머리를 저은 사내가 말을 이었다.
    「루시 존스는 미국 국적이어서 여기선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국 정보회사에 의뢰를 해야 됩니까?」
    「돈이 꽤 들겁니다.」
    사내의 말에 김태수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때 사내가 봉투에서 다시 서류 한 장을 꺼내 김태수 앞에 놓았다.
    「조사하는 김에 김선생님의 조상님을 찾아보았지요. 루시양 대신으로 말씀입니다.」
    「허, 이건 시킨일도 아닌데.」
    했지만 김태수는 궁금한 듯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사내가 말을 잇는다.
    「아버님은 아직 생존해 계시고, 조부 김만기님이 1910년생으로 일본 육사를 나오신 것 알고 계신지요?」
    「예? 일본 육사요?」
    놀란 김태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머리를 젓는다.
    「해방 후에 경찰서장을 하신 건 아는데, 금시초문입니다.」
    「일본 육사를 졸업하시고 만주에서 헌병 대장으로 근무하시다가 해방을 맞으셨지요.」

    이제 김태수는 입을 다물고 눈동자만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