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번째 Lucy 이야기 ①  

     오늘은 대한민국의 전(前)대통령 국민장이다.
    뉴스를 보니 대한민국에서는 지금까지 국민장이 12번 치러졌으며 이번이 13번째라고 한다. 정부가 주관하는 성대한 장례식인 것이다.

    오전 8시. 룸서비스로 시킨 커피를 마시며 나는 TV의 영어 뉴스를 듣고 있다. 오늘도 쉬기로 해서 마음이 느긋하다. 장례 행사 요원이 되어있는 테드는 바쁘고 심란할 것이었다.

    한 모금 커피를 삼킨 내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나에게 이승만의 수기를 전해준 뉴만 제작소 사장 김동기의 조부 김일국은 워싱턴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의 통역이며 독립협회 회원이다.

    제4장 끝부분에서 이승만과 만나는 장면이 나왔을 때 내 가슴이 뛰었다. 이렇게 자꾸 인연이 얽혀지고 있다. 테드의 증조부가 이승만의 경호원이었다는 것도 그렇다. 그것을 테드가 알면 어떤 얼굴이 될까?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나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영어로 응답했더니 곧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루시양, 일어나셨습니까?」

    고지훈이다. 오늘은 고지훈과 서해안 쪽 관광을 가기로 한 것이다.
    「저, 지금 로비에 와 있습니다. 천천히 내려오시죠.」

    8시 반에 만나기로 했으니 일찍 온 셈이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손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테드를 생각하면 조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다. 하루 종일 방안에만 박혀 있을 수도 없고 국민장 행사로 뒤덮인 시내를 벗어나고 싶었다.

    고지훈은 한국산 승용차를 가져왔는데 고급차였다.
    「형한테 빌렸습니다. 내 차는 낡아서요.」
    차 문을 열어주면서 고지훈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고지훈의 사촌 형 고영훈이 내 부탁으로 한국시장 조사를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차가 호텔 앞 거리로 빠져나왔을 때 내가 물었다.
    「미스터 고는 결혼 하셨나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궁금했지만 참고 있었다.

    그때 고지훈이 힐끗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직 안했습니다. 하지만 독신주의자도 아니고 여자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결혼 상대는 있어요?」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질문과 대답은 빠르게 이어져서 마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고지훈이 묻는다.
    「루시양은 미스니까 혼자이신건 알겠는데 남자 친구 있습니까?」
    「있어요. 근데 결혼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거짓말이다. 나는 테드하고 결혼 할 생각이었다. 갑자기 그런 거짓말이 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터널을 지난 차는 곧장 잘 정돈 된 도로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제 조상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관계가 있었던 분들이죠. 외조부와 외조모 양쪽 가문이 말예요.」

    놀란 표정이 된 고지훈이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의자에 등을 붙인 내가 말을 이었다.
    「외조부는 한성감옥서 부서장 이중진씨의 동생 이중혁의 후손이셨고 외조모는 이승만을 도운 의병장 박무익의 후손이었습니다.」
    「아아.」

    앞쪽을 향한 채로 고지훈이 탄성을 뱉는다. 그러더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셨군요. 루시양이 이승만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계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고지훈은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