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가 미국 간다니까 니 애인은 뭐래?」
    하고 심명하가 물었으므로 이동규는 머리를 들었다.

    이 곳은 홍대 근처의 포장마차. 말이 포장마차지 분위기 좋은 카페다. 드럼통을 오려 만든 술상에 싸리나무 울타리같은 벽, 술상 위의 항아리에는 막걸리가 담겨있고 표주박이 떠있다.

    심명하는 정색하고 있다. 박재희하고 모텔 간 이야기도 해주었기 때문에 감출 것도 없다.
    「뭐, 그냥. 잘 갔다 오라고...」
    이동규가 외면한 채 말을 잇는다.
    「그동안 고무신 바꿔신지 않겠다고.」
    「웃겨.」
    「그래서 괜찮다고 했어. 바꿔 신어도.」
    「서은대학에 다닌다고 했지?」
    「야, 화제 돌리자.」

    막걸리 잔을 든 이동규가 지그시 심명하를 보았다. 눈의 흰 창이 붉다. 지금 막걸리를 세동이째 마시고 있는 중이다. 세동이면 1리터 병으로 여섯병. 그동안 화장실에 두 번 다녀왔다.

    오후 9시 반. 머리를 끄덕인 심명하의 얼굴도 붉다. 심명하도 집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다른 분위기다. 연두색 반팔 티셔츠에 흰색 면바지를 입었고 흰 샌달을 신었다. 날씬한 몸매에 잘 어울린다.

    그때 심명하가 불쑥 물었다.
    「야, 우리가 이렇게 길게 간건 친구였기 때문이지?」
    「그런가?」

    이동규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벌컥이며 잔을 비운 이동규가 트림을 했다.
    「하긴 따먹을 기집애 앞에서 트림 한 적은 없었으니까.」
    「미친놈.」
    「니가 여자다운 매력이 없어서 그런게 아냐. 과 안에서 공사를 벌이면 여러 가지로 불편했기 때문에 그런겨.」
    「딴 놈들은 잘만 하더만.」
    「난 비위가 약해서.」
    「나도 남자하고 이렇게 오래간건 처음야.」
    「뭐가 처음이란거야?」

    정색한 이동규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오래 그걸 않고 참은 걸 말하는거냐?」
    「미친놈아. 남자 친구로 오래 간 것 말야.」
    「그게 그거지.」

    술잔에 술을 채우면서 이동규가 투덜거렸다.
    「감사패 하나 맞춰서 줘. 내 생년월일 불러줄게.」

    그때 주머니에 든 핸드폰이 울렸으므로 이동규가 꺼내보았다. 모르는 번호였으므로 뚜껑을 덮었다. 심명하가 머리를 들고 이동규를 보았다.

    「누구야?」
    심명하가 물었을 때 이동규는 심호흡을 하고나서 말했다.
    「너, 나하고 오늘 밤 같이 있자.」
    「미친놈.」
    「인제 친구 끝났잖아? 내가 떠나면 친구고 애인이고 다 종 치는거 아냐?」
    「관두셔.」
    「사정하는데도 안줄래?」

    문득 박재희의 얼굴 없는 모습이 떠올랐지만 이동규는 말을 잇는다.
    「소원이다.」

    박재희한테도 써먹었던 수법이다. 다만 박재희한테는 1백번도 더 사정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3백번쯤 했을 것이다.

    그때 핸드폰이 다시 울리는 바람에 이동규는 꺼내 보았다. 조금 전의 그 번호다. 어금니를 문 이동규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애인이면 이리 오라고 해.」

    심명하가 말했지만 이동규는 대꾸도 않고 몸을 돌렸다. 포장마차 밖으로 나온 이동규가 아직도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