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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갈아 입으려고 집에 들렀더니 어머니가 돌아와 있었다.
어머니의 바운더리는 일산쪽 같다. 일산에 물 좋은 나이트가 있다던데 어머니가 그 좋은 물중 하나인지 모른다.내가 거기로 찾아가 연상녀 해달라면 웨이터가 어머니 데꼬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층 계단을 오르는데 밑에서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머니가 묻는다.「너, 네 형한테서 연락 받았니?」
「누구?」
걸음을 멈춘 이동규가 다 알아들었으면서도 되묻는다.그러자 어머니가 계단 밑으로 다가와 이동규를 올려다보았다. 맨 얼굴의 어머니 눈 밑이 푸르다.
「동민이가 국제호텔 1207호실에 있단다.」
그러더니 어머니가 입술을 비틀고 웃는다.
「네 숙모한테서 들었다.」
「시발놈.」마침내 낮게 욕설을 뱉은 이동규가 다시 발을 떼면서 말을 이었다.
「나 바빠. 그새끼 생각할 시간도 없다구.」어머니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이동규의 형 이동민은 세 살 위였으니 스물다섯.
UCLA를 졸업하고 지금 아버지 회사의 기획실장으로 일한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LA에서 대형 슈퍼마켓 세 곳을 소유한 억만장자인 것이다. 사업 수완도 있지만 할아버지한테서 받은 재산을 잘 굴린 덕분이다.방으로 들어선 이동규가 옷을 다 갈아입고 겨드랑이에 향수를 뿌리고 있을 때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곧 어머니가 들어섰다. 어머니가 이층에 올라온 것은 드문 일이다.
「너 바뻐?」
하면서 어머니가 창가의 의자에 앉았으므로 이동규는 이맛살을 찌푸렸다.오후 4시 반. 시간은 충분하다. 안바쁘다.
「응 바뻐.」
대답은 그렇게 했더니 어머니가 눈으로 앞쪽 의자를 가리켰다.「앉아봐. 할 이야기가 있어.」
「바쁘다니까.」
하면서도 이동규는 앞쪽에 앉아 딴전을 보았다.어머니 얼굴을 보면 괜히 멋쩍다. 특히 어머니가 외박을 하고 온 다음 날에는 더 어색하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난 그렇지만 넌 네 형하고 만나는게 낫지 않을까? 네 숙모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아 시발.」
이동규가 이맛살을 찌푸렸다.핸드폰을 소지한 후부터 이동규는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 이유는 「LA사람들」 때문이다. 「LA사람들」이란 아버지와 형을 말한다.원인이야 어떻든 간에 둘씩 편이 갈라진 것에 대한 반발일지도 모른다. 같이 사는 어머니한테 화를 풀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번에도 형은 한국에 오는 길에 이동규를 만나려는 것 같다. 그래서 숙모한테 연락을 했을 것이다.
이동규가 어머니를 보았다.
「왜? 그새끼가 엄마는 안만난대?」
「그거야 나중에.」
하고 어머니가 얼버무렸으므로 이동규가 피식 웃었다.
「죽은 후에?」
「얘, 동규야.」
「시발놈이 잘난 체 하고있어. 지가 엄마 안만나면 나도 「LA놈들」 안만나.」「LA사람들」이 이제 「LA놈들」이 되었다.
이동규가 말을 잇는다.
「시발놈이 간첩 접선하자는 거야 뭐야? 정정당당하게 여기 찾아와서 엄마랑 날 만나면 되는 것 아냐?」이동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형은 열다섯살 때 부모가 이혼했기 때문에 상황을 알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