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는데.」
    하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심명하다. 둘은 식당을 나와 도서관 아래층 로비의 창가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다. 냉방 장치가 잘 된 로비는 시원하다. 개학때가 다 되어서 뒤쪽으로 오가는 기척이 많아져 있다.

    창 밖을 바라보던 심명하가 말을 잇는다.
    「네가 2학기때부터 안나온다니까 하는 말야. 잘 들어.」

    마치 선생같은 말투여서 이동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친구로서 말하는데, 너 그러다 지친다.」
    「지쳐?」
    이동규가 눈썹을 찌푸렸다.
    「뭐가 지쳐?」
    「인생이.」
    「어쭈.」
    「맨날 술먹고 여자 바꾼다고 나아지는 것 있어? 그러다 지치는거지.」

    그리고는 심명하가 머리를 돌려 이동규를 보았다.
    「내가 다 알아. 니 이야기는 수시로 나한테 전해지거든.」
    「시발, 언놈이.」
    「니 바운더리도 다 알아. 니 작업 수단도.」
    「조까.」
    「니가 약만 안할 뿐이지 막장까지 간다는 것도 알아.」
    「그놈이 언놈이야? 대.」
    「년이야.」

    입을 다문 이동규를 심명하가 똑바로 보았다.
    「니가 거쳐간 년.」
    「지기미.」
    「넌 기억도 못할거야.」
    「그런 년을 내가 기억 할 리가 있나?」
    「그래. 미국가서 뭐 할지 나한테 말해주지 않을래?」
    하고 심명하가 말머리를 돌렸으므로 이동규가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심명하의 시선을 받더니 어깨를 늘어뜨린다.

    심명하가 차분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말해.」
    「걍 구경하면서 쉬려고.」
    「입대 연기는 되는거야?」

    그 순간 이동규가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면서 말했다.
    「진단서 만들어서 면제 받을거야.」
    말을 뱉고 나니까 다시 가슴이 꺼림직 해서 이동규는 심호흡을 했다.

    그때 심명하가 또 묻는다.
    「네 어머니가 허락하셨어?」
    「허락은 무슨, 내 맘이지.」
    「아버지는?」
    「그 사람 나하고 연락 안한지도 오래되었어.」
    했다가 아차 했지만 늦었다.

    심명하의 시선이 화살처럼 박혀져 있다. 그러나 심명하는 입을 열지 않는다. 바로 이런 것이 심명하의 성품이다. 다른 놈 같았다면 「너, 미국 아버지한테 간다고 했잖아? 근데 연락 안한지 오래 되었다니. 무슨 말야?」하고 대뜸 따졌을 것이다.

    마침내 이동규가 다시 말을 잇는다.
    「걍 미국 여행 가는거야. 아버지한테는 안들려.」
    「오늘 저녁에 나 술 한잔 사줄래?」

    불쑥 심명하가 물었으므로 이동규는 시선을 들었다. 그러나 심명하는 똑바로 앉아 유리벽 밖의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이동규가 머리를 끄덕였다.
    「좋지. 한잔 하자. 홍대 근처로 갈까?」
    「아무데나.」
    「소주 마실래?」
    「아무거나.」
    「호텔 아니어도 되지?」
    했지만 심명하는 넘어가지 않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다는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