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탈출의 문'이 열리다

    별관 정원에는 전깃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 대낮같이 밝았다. 나는 이규수 참사관에게 베넷 공사와 만나서 한 이야기와, 한국고위외교관 두명은 미국의 마틴 대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미 제7함대에 가있다고 알려준 뒤 대책을 협의했다. 신상범(愼翔範) 서기관, 이달화 소령, 안병찬 한국일보기자, 이순흥(李順興) 회장 외에 몇명이 주위에 모였다. 우리 한국인들이 헬리콥터를 빨리 탈 수 있는 길은 현지 미국통제관의 도움을 받는것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달화 소령과 이순흥 회장이 막 후교섭을 하여 미국통제관을 나에게 데리고 왔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우선권을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정부에 건의해서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도록 할테니 이름과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그는 좋아하면서 이름과 주소를 적어서 나에게 주었다. 우리 한국인이 집결하고 있는 곳과 개찰구와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의문부호 ?와 같은 모양이 된다.

  • ▲ 헬리콥터 ⓒ 연합뉴스
    ▲ 헬리콥터 ⓒ 연합뉴스

    별관 마당에는 널찍한 수영장이 있고 그 수영장 외곽을 빙돌면서 4열종대로 줄이 형성되고, 이 줄이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며 개찰구를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줄의 맨 후방에 밀려있는 한국인을 포함한 우방국인들은 역설적으로 개찰구에서 아주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의문부호 모양의 맨 첫 부분인 지점에 집결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직도 줄을 설 차례조차 오지 않아 한국인들은 8열종대를 형성하고 잔디밭에 지루하게 앉아있었다. 그러나 이 미국통제관의 도움으로 우리는 극비리에 우선권을 얻어낸 것이다.

    헬리콥터 두대가 본관정원에 내리자 별관지역 4열종대의 줄이 서서히 움직이며 개찰구(출입문)를 통과하여 헬리콥터 탑승장인 본관마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 줄은 미국 민간인들과 미국인과 결혼한 월남부인 및 그들의 자녀들이었다. 줄을 통제하고 있는 미국통제관은 한국인들이 앉아있는 앞에서 줄을 끊고 뒤에서 오는 사람들을 정지시켰다.

    줄은 두동강이 나고 앞의 부분은 계속 전진하면서 그 간격이 점점 벌어졌다. 미국통제관의 통제하에 그 사이로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들어가 앞의 줄 후미에 연결되었다. 한국 민간인들은 차례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질서있게 조용히 대사관 직원들 뒤를 따랐다. 누가 봐도 미국대사관 철수본부의 지시에 따라 한국 외교관들과 그 일행을 대접해 주는것 같이 비쳤다.

     - 한발 더 앞서려다, 귀한 탈출의 기회를 놓치다

    외교관 신분으로 별관 지역에 와 있는 것은 한국 외교관들 뿐이었다. 미국통제관이 사전에 나에게 단단히 부탁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절대로 뛰거나 소란을 피우지 말것이며, 조용하고 질서있게 행동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민간인들에게 신신당부했고, 민간인들은 그것을 꼭 지키겠노라고 다짐했다.

    한국인 약 100명이 줄지어 나갈때 까지는 질서가 잘 유지되었다. 한국인 4열종대의 선두는 개찰구 약 8미터 지점에 도달했으며, 계속 전진하고 있어서 헬리콥터 탑승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이때 한국인 집결대기 장소에 남아있던 한국인은 약 70명이었고, 그들의 월남부인과 자녀들 및 월남부인의 부모 형제들이 약 40명 있었다. 이들만 조용히 일어서서 줄을 형성하면서 뒤를 따른다면, 모두가 안전하게 헬리콥터를 타고 미 제7함대로 후송되어 모든 일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 ▲ 헬리콥터 ⓒ 연합뉴스
    ▲ 헬리콥터 ⓒ 연합뉴스

    그러나 이 결정적 시기에 사고가 발생했다. 월남부인들과 그들의 한국남편, 그리고 일부 한국 민간인들이 보따리를 들고 일어서더니 남보다 한걸음이라도 앞서보겠다고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자극되어 앉아있던 한국인 약 60명이 일제히 일어서서 와르르 뛰어나왔다. 미국통제관에 의해 멈춰서서 다음순서를 기다리던 4열종대의 뒷줄도 반사적으로 우르르 흩어지면서 뛰어나왔다. 한국인 집결지 옆에 있던 필리핀인들도 이에 질세라 뛰어나왔다. 줄은 삽시간에 모두 없어지고 뒤범벅이 되어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나는 밀고 밀리는 인파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채 진땀을 흘리다가 겨우 빠져나와 숨을 돌렸다. 어떻게 얻어낸 한국인 탑승 우선권인데, 그걸 한국인 스스로의 개인 욕심을 앞세운 무질서로 이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리다니 기가찰 노릇이었다.

    미 해병대는 여러 겹으로 개찰구를 봉쇄·차단하고, 철수수송을 중단한채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질서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우리대사관 무관 정영순 대령을 불러 이달화 공군소령, 이문학 해군중령과 해군사병 두명 등 현역장병들은 가방속에 들어있는 군복을 꺼내 모두 갈아입도록 지시했다. 그런다음 정대령의 지휘하에 개찰구를 봉쇄하고 있는 미 해병대에 말하여 관문을 통과, 헬리콥터를 타고 떠나라고 명했다. 외국군일지라도 군인은 군인끼리 통하는 법이며, 또 군대에서 계급은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다. 정 대령은 내 지시대로 현역장병들을 데리고 먼저 떠나겠다고 대답한 뒤 물러갔다.

    그 다음으로 선임자인 내가 할 일은 고위층에 보고하여 이 긴박한 상황을 해결해 주도록 건의하는 일이었다. 나는 50미터쯤 떨어진 전등불이 더 밝은 별관 식당으로 들어가서 태평양지구 미군 총사령관에게 보내는 전문을 기안했다. 내가 영어로 구술하고, 한국외국어대학을 나온 이순흥 회장이 받아썼다. 이규수 참사관 이하 여러명의 한국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전문1] 긴급
    수신: 미태평양지구총사령관. 1975년 4월 29일 2220시
    발신: 주월한국대사관공사 이대용.
    4월 29일 2220시 현재 주월한국대사관 외교관 11명을 포함한 약 160명의 한국인이 사이공 미국대사관 내 별관에 잔류하고 있음. 긴급구출 바람.

    [전문2] 긴급
    수신: 대한민국대통령각하. 1975년 4월 29일 2220시
    발신: 주월한국대사관공사 이대용.
    4월 29일 2220시 현재 주월 한국대사관외교관 11명을 포함한 약 160명의 한국인이 사이공 미국대사관 내 별관에 잔류하고 있으며 사태는 위급함. 미국측과 협조하여 구출 바람.

    전문을 구술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다. 한국일보 안병찬 기자였다. 전문작성이 끝난 후 대통령 각하로 되어 있는 수신인을 미 제 7함대에 가있는 한국고위외교관 이름으로 수정했다. 두장의 전문은 미 대사관 본관에 있는 미 해병대 통신실 통신망을 통해서 보내는 것인데, 대통령실까지 가려면 통신연결이 잘될지 의문이었다. 또한 연결된다 하더라도 시간적으로 너무 지연될 우려가 있어 수신인을 바꾸었던 것이다.

    나는 두 통의 전문에 서명하여 이순흥 회장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속히 통용문 있는 곳으로 가서 한국 현역군인을 찾아, 내가“미군통신망을 이용하여 긴급 발신하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음을 전하도록 했다. 이순흥 회장과 그 옆에 있던 두명의 한국인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약 5분후 그들이 돌아왔다. 두 통 모두 이상 없이 전달되었으며, 내 지시사항도 그대로 전했다고 했다.

     - “여기 시한폭탄이 장치되어 있소! 곧 폭파하여 몰살하게 될거요!”

    4월 30일 0시가 지난 후, 미 대사관 레만 공사가 별관으로 나왔다. 나는 그에게 한국인 완전 철수수송에 대하여 유념해주도록 부탁했다. 레만 공사가 본관으로 돌아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본관과 별관사이의 개찰구 통용문이 활짝 열리고, 별관에 있는 모든 인원들을 본관마당으로 들어가게 했다.

    개찰구를 통하여 한번에 120명씩 들어가서 두 대의 헬리콥터에 탑승하는 종전의 방법을 변경하여, 대기인원 모두를 플랫폼인 본관마당에서 줄지어 앉아 기다리게 했다. 그런다음 헬리콥터가 오면 앞줄부터 120명이 탑승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이때 정렬해 앉아있는 인원은 약 900명으로 추산되었다.

    내가 한국인들을 인솔하고 이곳에 들어온 것이 새벽 1시 30분경이었다. 미군 헬리콥터는 두대가 약 30분 간격으로 동시에 날아와서 120명씩 태우고 이륙했다. 4월 30일 새벽 4시 15분경, 한국인 집단 바로 앞줄 사람들과 한국인 일부를 태우고 헬리콥터 두대가 떠났다. 한국인들이 전부 탑승할 차례가 드디어 왔다고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순간 대사관 경비와 민간인 및 외국인 철수를 통제하고 있던 미 해병들이 갑자기 수상한 거동을 보이더니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우방국인들 약 450명에게 최루탄을 터뜨려놓고, 등을 돌려 쏜살같이 본관 현관쪽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나는 뒤쫓아 달려가서 “나는 대한민국 대사관 공사다. 너희들 지휘관은 어디 있느냐?”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미 해병들에게 잘 먹혀 들어갈 말을 크게 소리쳤다.

    “나는 한국대사관 공사이고, 또한 육군 장군이다. 책임 장교는 어디 있느냐?”

    그러나 약 100명쯤으로 보이는 그 부대에는 장교는 한명도 보이지 않고 하사관이 사병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육군장군이라는 호통에 하사관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줄을 지은 해병들의 선두는 대사관 본관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해병들이 다 들어서면 셔터는 내려질 것이고, 해병들은 본관 옥상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떠날 것이다. 돌아보니 내 뒤를 따라온 한국인은 안희완 영사 한 명뿐이었다. 이대로 미 해병을 따라 대사관 본관으로 들어갈 것인가? 그러나 도저히 그럴수는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절박하게 느끼며 버려져 있는 한국 외교관들과 민간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긴급조치를 취하여야 할 책임이 나에게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 140명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미 해병들이 터뜨린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면서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판에 누군가가 “여기 시한폭탄이 장치되어 있소! 곧 폭파하여 몰살하게 될거요!”라고 소리쳤다.

     

  • ▲ 헬리콥터 ⓒ 연합뉴스

    <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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