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항소심 공판(재판장 이상훈)이 22일 서울 중앙지법 형사항소 9부에서 열렸다. 이날 증인으로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에 참여했던 보조작가 이연희씨와 번역 및 감수를 맡았던 정지민씨가 채택돼 지난 1심 대질심문에 이어 의도적 번역 오류 등에 관해 열띤 공방을 펼쳤다.

    이날 공판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2008년 방송 이후 MBC PD수첩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논쟁을 벌인바 있는 두 사람은 엇갈린 진술로 일관했다.

    ◇ 정지민 번역본, 의도적으로 폐기했나

    검찰은 정지민씨의 번역이 완성됐음에도 ‘PD수첩’ 제작진이 자신들의 의도와 맞지 않자 이를 채택하지 않고 다른 번역가에게 재의뢰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연희가 이중번역을 이유로 다른 번역가의 번역본을 방송에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실수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연희씨는 "해외 촬영을 마친 김보슬PD가 귀국 전 위성으로 파일을 전송해줬고 하루 이틀 정도 뒤에 컨버팅 과정을 거쳐 번역가에게 맡겼다. 그러나 이 파일들의 이름이 뒤섞여 김PD 귀국 후 가져온 파일과 겹치는 부분이 있음을 나중에 확인했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연희 작가의 컴퓨터에 저장된 한글 파일들의 시간들이 저장시간이 기록돼 있는데 정지민씨가 번역한 파일이 나중에 작업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반면 이연희씨는 "메인작가가 뒤늦게 번역이 겹치는 사실을 알고 겹치는 것을 폐기하라고 지시했다"면서 "먼저 작업을 완료한 번역가의 번역본을 방송에 사용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잘못된 번역, 누구 손에서 탄생했나

    PD수첩 광우병 방송에서 가장 큰 파급력을 지녔던 '인간광우병'도 쟁점으로 작용했다. 미국인 여성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방송에는 비쳐졌으나 실제 그녀의 사인은 위절제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정지민씨는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인 로빈 빈슨이 MRI 결과에 의해 사망원인을 A variant of CJD(크로이츠펠트 야콥병)라고 밝혔으나 방송에서는 vCJD(변종 CJD, 인간광우병)으로 나왔다"면서  "A variant of CJD는 인간광우병을 지칭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A variant of는 종류(a type of)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유연한 표현으로 실제 미국에서 의학적 표기로 인간 광우병은 New variant CJD로 표기된다"고 증빙 자료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는 또 "처음 번역 의뢰를 받았을 때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으로 죽은 여성에 관한 내용이라고 이연희 작가에게 설명을 들었다"면서 "내가 오역과 관련해 인터넷에 이의제기를 하자 조능희 책임프로듀서가 전화로 사과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검찰조사가 시작된 후였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이연희씨는 "번역가가 작업한 번역물에 대해서 수정하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자막을 삽입하기 위한 작업을 정지민씨와 함께 할 때에도 시간이 촉박해 하나하나 이야기를 나눠가며 진행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또한 "당시 방송과 관련해 약 3일간 프로그램 전체도 아닌 일부를 번역한 정지민씨가 제작진도 아니면서 방송의 기획의도나 전반적 내용을 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된다"고 주장했다.

    ◇ 감수자 몰래 자막 조작했나

    검찰은 제작진이 만든 자막 초안이 실제 자막과 일치하는 점, 정지민이 자막에 부인하는 부분 등을 들어 이연희와 제작진이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연희는 눈이 나쁜 정지민이 감수 전 자막 초안을 달라고 하자 이를 프린트해 줬으나 이를 부인하고 있다”면서 공세를 계속했다.

    이연희씨는 “처음 정지민씨에게 프린트를 주려고 했으나 감수 장소가 바뀌는 바람에 줄 필요성이 없다고 느껴 주지 않았다. 내가 ‘인쇄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실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지민씨는 “돈이 필요해서 한 일도 아니었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라 번역, 감수에 나섰던 것이었는데 눈이 불편한데 자막의뢰서를 주지 않았더라면 기분이 나빠 그냥 집에 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2008년 4월 29일 방송된 MBC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과 협상 결과의 문제점을 왜곡 과장해 협상대표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제작진 5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1심에서는 “PD수첩의 보도를 허위사실로 보기 어렵다”며 제작진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