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는 1904년 12월 6일이다.
    제물포항을 11월 4일에 출발 했으니 한달 하고 이틀이 걸렸다.

    「안창호씨는 지금 로스엔젤리스에 가 있습니다.」
    나를 맞은 안정수가 먼저 안창호에 대해서 말했다.

    안창호는 나보다 세 살 늦은 1878년 생으로 유학 목적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온 것은 1902년이다.

    시내 호텔로 가는 중이었는데 안정수가 묻지를 않았어도 말을 잇는다.
    「작년에 안창호씨가 한인회를 결성했지요. 알고 계십니까?」
    「들었소.」
    나는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많이 들었다.

    미국, 특히 본토로 옮겨간 한인 이민자들이 추태를 부린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아직도 상투머리로 다니면서 인삼장사의 지역권을 놓고 서로 상투를 잡고 싸워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무리는 청인들과 함께 다니면서 한인들을 괴롭힌다고 했다. 

    안창호가 한인회를 결성한 것은 정치적 목적뿐만 아니라 한인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안정수가 안내한 일본인 소유의 호텔은 낡았지만 쌌다. 방까지 같이 들어온 안정수가 창가의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몇명 안되는 한인들이 똘똘 뭉쳐 있어도 어려운 판국에 여러 세력으로 찢겨져 있습니다. 거기에다 일본놈 정보원으로 먹고 사는 놈들이 여럿이지요.」
    「세상에 어떤 놈들이.」

    분개한 이중혁이 안정수를 보았다. 안정수는 1902년 10월 22일의 제1차 이민선이 떠날 때 통역으로 동행해 온 터라 현지 물정은 누구보다도 많이 안다.

    쓴웃음을 지은 안정수가 말을 이었다.
    「대한제국이 싫어서 떠난 사람이 많습니다. 이제 미국 시민이 된 마당에 누구한테 붙던 상관이 없지 않겠습니까?」

    말문이 막힌 이중혁의 시선이 옮겨져 왔으므로 나는 외면했다. 회중시계를 본 안정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곳은 한인들이 많은 지역입니다. 저녁때 나가보시면 분위기를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안정수가 나가자 우리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침내 미국 본토에 도착했다는 감흥은 어느덧 사라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중혁은 더한 것 같았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세.」
    하고 내가 말했더니 잠자코 몸만 일으켰다. 거리로 나온 우리는 두리번거리며 식당을 찾았다.
    될 수 있으면 싼 음식을 먹어야 했으므로 허름한 식당을 찾는 것이다.

    오후 7시경이어서 거리에는 행인이 많았는데 동양인이 절반쯤 되었다.
    그런데 한인인지 청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때였다. 옆에서 조선어가 들렸다.
    「이것보시오. 조선인 아니시오?」
    머리를 든 나는 옆에 서있는 동양인을 보았다. 코트 차림에 중절모를 썼는데 웃음 띤 얼굴이다.

    「그렇습니다만.」  
    대답은 이중혁이 했다. 이중혁이 사내에게 물었다.
    「왜 그러시오?」
    「여자가 필요하지 않으시오?」

    그러더니 사내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보였다.
    「조선에서 건너온 지 얼마 안 되는 조선여자가 있습니다. 2불만 내시면 한시간 동안 놀게 해드리리다.」
    「뭘 하고 논단 말이오?」
    하고 이중혁이 묻자 사내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입맛을 다시고 나서 말한다.
    「옷을 벗고 노는거요. 둘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