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⑬

     「호놀루루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어요.」
    둘이 되었을 때 오선희가 말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오선희의 표정은 밝다.
    그것이 나에게는 조금 서운했다. 마치 어제도 만난 사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물었다.
    「집안은 무고하시지?」
    「재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제가 가장이 되었네요.」

    여전히 그늘 없는 얼굴로 말한 오선희가 이번에는 묻는다.
    「미국 어디로 가시죠?」
    「워싱턴.」
    「그곳에서 오래 머무실 건가요?」
    「아직 모르겠어.」

    대답한 내가 벽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 반이다.
    배는 오늘 오후 1시에 출발하니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 오선희가 손을 뻗어 내 손을 쥐었다. 자연스런 태도여서 나도 어색해지지 않았다.

    「선생님, 제가 미국으로 따라갈까요?」
    「안돼.」

    바로 말을 자른 내가 오선희를 향해 웃어보였다.
    「내가 맡은 일이 있어. 그것을 처리할때까지는 집중해야돼. 그리고,」

    당장의 여비도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내가 오선희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안고 말했다.
    「여긴 한인들이 많은 곳이니까 윤목사의 일을 돕도록 해.」

    오선희가 눈만 깜박였고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럼 다시 만날 수가 있을테니까.」
    「전 중국인 동업자를 잘 만나서 사업이 순조롭게 됩니다.」

    오선희가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안았으므로 탁자위에 두쌍의 손이 엉켜졌다.
    「중국과 필리핀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데 작년에는 화물선도 한척 구입했어요.」

    그러더니 오선희가 똑바로 나를 보았다.
    「어떻게든 선생님을 돕고 싶어요.」
    「다시 또 만나게 될테니까.」

    내가 오선희의 손등을 쓸면서 웃었다.
    「과연 자유의 세상이군. 오선희가 화물선 선주가 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

    그때 문 밖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으므로 우리는 손을 떼었다. 
    문이 열리더니 윤병구와 농장주 정명호가 들어섰다.

    「떠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윤병구가 말했을 때 정명호가 접혀진 봉투를 내밀었다.
    「선생님, 이것은 저희들의 성의 올시다. 여비에 보태 써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전 받을 수 없습니다.」

    놀란 내가 사양했지만 윤병구까지 나서서 권하는 통에 나는 받고 말았다.
    이국땅에 노동자 이민으로 떠나온 동포들한테서 여비를 받다니. 이 돈이 어떤 돈인가?
    배고픔과 설움을 견디며 사탕수수를 벤 품값이 아니던가?

    호놀루루로 돌아가는 기차에 앉아서도 나는 감동을 이기지 못해서 좌불안석이 되었다.
    내 옆에 앉은 오선희는 분위기를 눈치챈 것 같다. 그래서 기차가 호놀루루에 도착했을 때 나한테 낮게 말했다.

    「여기선 그런 일 보통이예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시지 마세요.」
    그러더니 서두르듯 말을 이었다.
    「선생님, 꼭 연락 하셔야 돼요. 제가 기다리고 있다는거 잊으시면 안돼요.」

    오선희의 시선을 받은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어찌 잊겠는가?
    감옥서에 갇혀있었을 때도 잊지는 않았다. 인간은 생각하는 생명체며 희망은 활력을 준다. 오선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활력을 느꼈으니 그것은 곧 희망이었다. 다시 만날 희망이었던 것이다.

    기차에서 내린 나는 오선희와 작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