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족 질곡의 역사가 담긴 이태원

    이태원(梨泰阮)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행정구역명이다. 조선 효종 시절 이 곳에 배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는 동명의 동(洞)만을 일컫기 보다는 한남동, 보광동, 이태원동 등을 모두 ‘이태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또 다른 역사 속 이태원은 우리 민족의 고난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른 설에 따르면 이태원의 원래 명칭은 ‘이태원(異態園)’이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고려 시절 몽고군의 침략 당시 몽고군도 용산에 주둔해 우리 백성들을 약탈하고 강간했다고 하지만 공식적인 기록에서의 시작은 임진왜란.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서울 지역에 머무르면서 납치한 조선 여성들로 위안소를 설치했다고 한다. 이때 이태원 지역에는 여승들만 머무르던 ‘운종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왜군들은 이들마저 윤간, 임신시켰다고 한다.

    이후 왜군은 퇴각할 때까지 수많은 조선 여성들을 강간하고 임신시켰는데 조선 조정은 그런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을 집단으로 보육할 곳을 이곳에 지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이태원(異態園)’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외세 침략과 관련된 이태원의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선 말 1880년 양민들로 구성된 구식군대와 사대부 집안 자식들로 구성된 신식군대 간의 차별로 폭동이 일어난 뒤 이를 제대로 진압하지 못했던 무능한 조정을 대신해 청나라 군대가 인천을 통해 서울로 들어왔다. 이때 용산에 주둔했던 청나라 군대 또한 조선 여성들을 납치 강간하는 등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이후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빼앗은 일본 제국도 이태원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이 때 일본군이 주둔지로 삼은 곳이 바로 이태원 일대의 현재 미군기지 자리다. 그 다음에는 해방과 동시에 주한미군 사령부가 이태원에 자리를 잡았다. 

    이태원, 화려한 부촌

    미군이 자리를 잡은 이후 이태원 일대는 한동안 ‘양공주’라 일컬어지는 미군을 상대하는 창녀들과 미군에서 몰래 빼돌린 군수품을 판매하는 이들이 자리를 잡았다. ‘양공주’들이 낳은 혼혈인들도 이 지역에 많이 살았다. 여기다 이 지역에서는 미군 범죄도 왕왕 일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태원을 ‘위험한 지역’으로만 인식했다.

    이 같은 인식은 논밭이었던 강남이 부촌(富村)의 대명사가 되고, 외국인 유입인구가 증가하고, 미군의 태도 변화가 일어나는 90년대 후반 이후 바뀌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태원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과 한국인들이 별 경계심 없이 어울리는, 이국적인 지역으로 변신한다.

    한편 이 같은 면 이외에도 이태원은 ‘아는 사람은 아는’ 부촌으로도 유명해졌다.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 육군참모총창 공관 등 주요 고관 관저가 있는 것은 물론 수십여 국가의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이태원 지역에 밀집해 있다. ‘외교관 전용 거주구역’으로 알려져 있던 ‘UN 빌리지’는 한국인에게도 개방되면서 최고급 주택가로 변신했다.

    실제 UN빌리지의 대표적인 고급 주택인 ‘헤렌 하우스’는 전용면적만 230㎡에 이르는 고급 주택으로 2010년 2월 경매 감정가격이 47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고, 최근의 부동산 경기 하락 이전까지는 40~50억 원에 거래를 희망하는 이는 많아도 매각하는 이가 없어 몇 달에서 몇 년 동안 대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는 임대 또한 일반적인 거주지와는 다르다. 이태원 일대에는 210㎡(약 70평) 이상의 고급 빌라들이 많다. 이 빌라들은 월세지만 미국식 렌트 개념으로만 임차할 수 있다. 즉 매달 돈을 내는 게 아니라 2년 치 월세를 선지불 하는데 월세가 200만 원에서 1천500만 원에 이른다. 이런 곳에는 주로 유명 연예인이나 외국계 기업 임직원들, 외교관 등이 거주한다.

    이 같은 UN빌리지의 ‘명성’은 단국대가 2007년 8월 경기도 용인시 죽전으로 이전하고, 그 부지에 금호건설이 ‘한남 더 힐’이라는 최고급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밝히면서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금호건설이 분양 중인 한남 더 힐은 32동 600가구 규모의 대규모 임대주택 단지로 215㎡(65평)부터 332㎡(100평)까지의 대형 임대주택으로 구성돼 있다. 임대 보증금은 14억800만 원부터 25억2천70만 원이며, 월세는 240만 원부터 429만 원까지다.

    UN빌리지보다 더 비싼 주택들도 있다. 바로 그랜드 하이야트 호텔 아래로 늘어선 호화저택들이다. 이 지역에는 삼성, 금호, 농심, 신세계, LG, 현대기아차, 동부 등 거대 그룹 오너들의 자택이 몰려 있다. 익히 알려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집과 집무실인 승지원은 이태원동과 한남동에 있고, 구본무 LG그룹 회장, 이준기 동부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집도 한남동이다.

    관광특구 이태원

    이태원동은 다른 의미로도 화려하다. 관광특구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국내외 쇼핑객들이 끊이지 않고 몰려드는 쇼핑의 거리다. 터키 케밥에서부터 이슬람식 할랄 음식, 아프리카 전통음식 등 세계의 이색적인 음식문화도 접할 수 있다.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브런치’를 가장 빨리 받아들여 유행시킨 것도 이태원 일대의 레스토랑들이다.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부터 녹사평역에 이르는 거리는 이런 레스토랑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유흥업소, 외국식 선술집들이 즐비하다. 이 짧은 거리에 호텔만 3개에 이른다.

    매주 금요일 밤에 되면 이태원 일대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클럽’이라 하면 홍대 인근의 클럽거리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태원에도 색다른 ‘클럽’들이 즐비하다. 이  곳에서 유명한 ○○ 등은 특히 외국인 영어강사,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등의 서남아시아인,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과 한국인 여성들이 어울리는 클럽으로 유명하다.  

    한국인 중년남성들과 일부 외국인들은 호기심 등으로 트렌스 젠더 술집을 찾는다. 아직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이들부터 육체적으로도 ‘여성’으로 변한 이들까지 많은 트렌스 젠더들이 근무하는 이런 술집들은 이태원을 ‘트렌스 젠더 문화의 중심’으로 인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 10년 사이 영어 광풍으로 외국인 남성 친구를 찾겠다고 나서는 여성들, 외국인을 남자친구로 둔 여성들 또한 주말이면 몸을 한껏 드러내고 이태원 거리를 찾는다. 이들은 이태원에서 외국인과 만나면서 ‘뉴욕 와 있는 느낌’을 마음껏 즐긴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이태원의 모습은 그 화려함과 함께 우리나라 자본주의 수준과 세계화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멋진 곳’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볼 수 없는, 그 숨은 모습에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모두 숨어 있다.

    ‘②대한민국 경제의 극과 극’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