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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정국은 정부여당이 지방선거결과와 이로 인해 크게 변한 정치지형(세종시 수정안 부결, 4대강은 이미 지자체에서 차단되고, 이미 야당의 연합정권투쟁이 공언되고 있는)을 어떤 식으로 ‘반성’하느냐에 달려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에 이 반성은 이명박 정권과 보수체제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 반성이 투철한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결여했을 때의 결과는 보수의 자멸로 이어질 것이다. 자멸의 결과는 차기대선과 총선의 패배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노무현 같은 ‘감성적 혁명가’가 아닌 ‘이데올로그형의 좌익혁명가’의 등장으로 귀결될 것이다.
아무튼 반성의 최종적인 결론이 무엇인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하겠으나 진행 중인 한나라당의 당권경쟁 양상이나 언론에 감지되고 있는 정권의 현실인식을 보면 그리 미덥지 못하다.
우선 한나라당의 전당대회는 ‘여러 나라당’이 합동으로 전당대회를 하고 있다고 할 만큼 정체성이 없고 후보들의 현실인식이란 것이 하나같이 조잡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지휘계통이 완전 붕괴된 패잔병 재편성작업을 방불케 하고 있다.
또한 보도되고 있는 정권일각의 현실인식을 보면 또 습관적으로 ‘지역탕평책’이나 ‘아랫돌 뽑아 윗돌 박는’ 정도의 인사책을 맴돌고 있다. 그런 식으로는 반성이 목표로 하는 진정한 조직발전은커녕 조직혼란만 가져올 공산이 크다. 그런 식의 해결은 기용된 인사들의 향우회나 동창회에서는 축하할일인지 모르겠으나 대다수 국민에게는 아무 감명도 주지 못할 것이다.
지금 정부는 나라의 근본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반성의 단초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잘못된 근본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를 통째로 시정한다는 것은 역량 상으로 그렇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민주주의과정자체를 손상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인 몇가지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심각한 안보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안보를 강조한 쪽이 패배하고, 오히려 안보에 시큰둥했던 쪽이 승리한 이유부터 생각하며 반성의 자세를 가다듬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전체의 안보’가 아닌 ‘너희들의 안보’라는 냉소의 만연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사는 길은 군 면제자나 기피자를 고위직, 특히 안보관련 부서장직에서는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의 진심과 결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단순히 배제만 할 것이 아니라 아예 인사원칙으로 선언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당도 마찬가지이다. 혹시 선출되었다 하더라도 자퇴해야 한다.
둘째는 법치주의의 엄격한 적용이다.
사회적으로 신앙화된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완전히 혁파해야 한다.
셋째,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정치권력이 경제권력과 사회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제도상 정치권력은 유한하고 경제사회권력은 무한할 수 있다는 데에 민주정치의 강점과 함정이 다같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사회적 기회의 배타적인 원천봉쇄가 존재하다고 일반인이 느끼면 문제는 사뭇 달라진다.
그렇다고 기업활동을 저해하고 사회문화의 자유를 침해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대대로 잘살고 대대로 큰소리치는 구조에는 어떤 형태의 그리고 어느 정도의 메스가 가해져야 한다. 지금의 이 사회에서 특히 젊은 층이 좌익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은 그런 불만 때문이다.
지난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영국인들은 IT산업이나 금융 등 신종산업으로 치부한 계층에 대한 반감은 거의 없다는 대답을 했다. 문제는 세습적 부에 대한 심한 반감을 나타낸 것이다.
넷째는 정치권력의 조직화이다. 국력도 조직화해야 하지만 정치권력도 조직화해야 한다. 정치권력의 조직화가 되지 않으면 지금 이 사회를 양분한 갈등을 결코 극복할 수가 없다.
지금의 갈등은 공동의 목표를 중심으로 한 정파 간의 노선갈등이 아니다.
목표가 다른 세력 간의 갈등, 즉 무엇이든지 반대해야 하는 ‘혁명세력’과의 갈등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혁명세력과는 토론과 타협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안에 따라 일시적인 타협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일보 후퇴 이보 전진’이라는 혁명세력의 전략전술적 타협이지 진정한 타협이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나라당은 재창당의 길을 마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권력의 조직화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당내에 혁명세력과 유사한 사고들이 산재해 있다. 창당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집합한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은 단순히 노선갈등이라고 할 수 없는 이념갈등으로 표류하고 있다. 지도노선이 전혀 성립되지 않고 있다. 이미 세종시 문제에서도 표출되었지만 앞으로 차기 대선과 총선의 공천과정은 엉망이 될 것이다. 거기에 단 한번의 정치적후폭풍에 걸려들면 지리멸렬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병서에 이대도강(李代桃僵)이란 말이 있다. 살을 베이고 뼈를 자른다는 의미이다. 이기기 위해선 국면의 손실은 감내하면서 전면의 우세를 기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즉 보수를 죽여야 보수가 산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