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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初選들은 자기쇄신부터 하라!
자신들의 공천 잘못을 허황한 말장난과 남탓하기로 덮으려는가?
외교적 修辭(수사)와 정치적 修辭(수사)는 닮은꼴이다. 차이라면 외교적 修辭는 세련되고 점잖다 못해 심히 밋밋한데 비해, 정치적 修辭는 화려하고 현란하다 못해 심히 공허하다는 것이겠다. 그래서 두 종류의 修辭學(수사학) 모두 그 진의를 파악하려면 해석이 좀 필요하다. 그런데 그 해석은 辭典(사전)만 가지곤 안 된다. 단어와 문장의 사전적 의미만 따라가다간 그 말씀의 심오한 본뜻을 놓치기 십상이다. 흔히 行間(행간)을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열쇠는 팩트(Fact) 즉 事實關係(사실관계)라는 거울에 비추어보는 것이다.
연판장의 속뜻,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다”
6월 10일 한나라당 초선 소장파 의원들이 서명했다는 이른바 연판장도 그 내용을 제대로 헤아리려면 그런 노력이 제법 필요하다. 연판장은 청와대, 정부, 한나라당 모두의 전면 개편을 요구하고 있는데 취지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한나라당과 청와대, 정부의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경고로 받아들인다.”
"한나라당이 진정성을 갖고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반성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불철저함과 무기력을 반성하고 한나라당의 쇄신과 이명박 정부의 성공 및 정권 재창출을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이런 유의 聲明(성명)에서 늘 대하던 익숙한 용어들이 보인다. 분위기도 나름 진지하고 사뭇 엄숙하다. 늘 그렇듯 贊反이 있겠다. 이들의 지적에 동의하는 쪽 당연히 있을 것이고 그 지적에 불편함을 느끼는 측도 있겠다. 하지만 불편함 때문에 一刀兩斷 매도할 일은 아니겠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존중은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속뜻이다. 속뜻을 헤아리다 보면 共感(공감)의 마음이 싹 가신다. 한마디로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얘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자기반성이 없으니 구체성이 없는 것이다
성명은 6.2 지방선거의 책임에 대해 뭉뚱그려 한나라당, 청와대, 정부를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적은 하나도 없이 애매하고 추상적인 용어만으로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민심, 일방적, 경고, 진정성, 소통, 불철저함, 무기력, 반성, 쇄신, 노력, 다짐 등등 중요하게 동원된 단어들을 보라.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정말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잘잘못은 언제나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다 나쁘다는 얘기는 전체적으로 다 좋다는 것만큼이나 쓸모없는 애기다. 병을 고치기 위해선 진단이 정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刷新(쇄신)’이라는 용어는 의학적으로 비유하자면 病根(병근)을 도려내는 수술과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그냥 전체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거나 혹은 엉뚱한 부위를 지목하여 메스를 들이대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수술이 아니라 그냥 칼질이다.
왜 이런 한계를 보이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정작 짚어야할 문제 하나를 빠뜨렸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들이 범한 잘못에 대한 진솔한 얘기다.
기초단체 선거의 패배는 누구 탓인가?
시시콜콜은 놔두고 사실관계 한 가지만 짚어보자. 한나라당이 6.2 지방선거에서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한 큰 원인 중의 하나는 잘못된 공천이다. 초선 소장파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이들은 반성을 운운하면서도 그 문제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서울의 경우를 보자. 시장 선거는 고전 끝에나마 이기기라도 했지만 기초단체는 사실상 전멸했다. 그런데 기초단체 후보의 공천은 누가 했는가? 聲明(성명)의 내용만으로 보면 마치 서명 의원들이 일방적으로 휘둘린 피해자인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기초단체 공천은 거의 전적으로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았나?
많은 지역구 일일이 따질 것 없이 딱 한군데만 살펴보겠다. 관악구의 경우 시장 선거 득표율이 한나라당 오세훈 93,184표 (39.34%), 민주당 한명숙 128,444표 (54.23%)였다. 꼴찌다. 구청장 선거 득표율은 한나라당 오신환 82,899표 (35.29%), 민주당 유종필 128,306표 (54.62%)였다. 한나라당 성향 무소속 후보의 출마가 없었음에도 최저 득표율을 기록한 시장 선거보다도 득표가 더 저조하다. 더 저조한 지역들이 표가 갈린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사실상 꼴찌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 가장 크나?
일부 의원들은 선거가 끝나자 세종시와 4대강을 가장 먼저 들먹였다. 그런데 물어보자. 서울의 구청장 선거에서 참패한 것이 그 때문인가? 백번 양보해 그것들이 한 원인이었다 치자. 그렇다면 관악구의 꼴찌 성적이 세종시, 4대강 때문인가? 나름대로 애로도 있고 어려운 가운데 노력도 있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자기반성은 없이 엉뚱한 데로 탓을 돌리면 그 점 헤아릴 마음도 사라진다.
정치적 修辭의 장막 뒤로 숨으면 진정성을 의심 받는다
쇄신을 주장할 때 널리 공감을 얻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자기반성이다. 그런데 이들에겐 지금 그게 빠져 있다. 물론 “우리 자신의 불철저함과 무기력을 반성”한다는 말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는 기초단체 공천에서 자신들이 범한 잘못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누군가의 탓’에 지금처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얘기일 뿐이다. 이것은 반성이 아니라 그냥 자기변호다.
이 문제점은 이들이 내건 요구조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세종시와 4대강 사업 등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국민요구를 적극 수렴 △일방통행식 國政운영 수정 △全黨대회를 통한 새로운 리더십 창출 △黨 화합을 위한 구체적 실천 △청와대 참모진 개편 및 國政운영시스템 개선 △親서민정책 적극 개발 등 6개항이 요구조건이다.
그 어디에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자성과 개선에 대한 얘기는 없다. 단지 남 탓만 하고 다른 쪽에 대한 요구만 있을 뿐이다. 이들의 주장이 모두 쓸모없다는 게 아니다. 경청해야 할 타당한 지적 당연히 있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점은 쏙 빼고 하는 얘기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는가?
거창한 얘기, 강도 높은 용어들은 대개의 경우 일종의 수사학적 커튼(Curtain) 구실을 한다. 뭔가 크고 센 얘기를 앞에다 내걸면 자신의 구체적인 잘못을 가리는데 제법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수사의 장막은 자신을 숨기는 데는 효과가 있어도 공감을 얻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이들의 표현을 빌자면 “진정성”을 의심 받는다.
남을 향해서만 손가락질 말고 자기 쇄신부터 하라
오세훈 서울 시장 당선자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소장파들의 쇄신 운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거 후 한나라당에서 벌어지는 푸닥거리를 보면, 반성한다는 미명下에 선거 패배를 빌미로 서로 총질을 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계기로 사용할 뿐 진심 어린 반성이 보이지 않는다. 진심으로 반성하려면 남 얘기하지 말고 黨은 黨에서 잘못한 것, 親李는 親李가 뭘 잘못했는지, 親朴은 親朴이 뭘 잘못했는지, 청와대는 청와대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면 되는데, 내 탓은 없고 상대방 탓만 하고 있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이런 정도의 균형은 필요한 것 아닌가? 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언제나 자신을 향해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 모든 것에 앞서 정말 필요한 쇄신은 자기 쇄신이다. 그에 철저하면 목청 높여 떠들지 않아도 대개의 사람들은 알아서 따라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