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이북5도청 강당에서는 평양 서문고녀(평양고녀) 졸업생들의 총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한 시간 쯤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늦은 봄의 비 방울이 하염없이 떨어지는 구기동을 향해 차를 몰고 갔습니다. 비록 내 나이 80을 넘었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왜? 평고보(평고중)에 다니던 사춘기의 우리들에게는 서문고녀의 교사와 거기 다니는 아름답고 총명한 딸들은 꿈의 동산의 천사들처럼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순진했던 세월이 다 가고 이제 8순의 노인이 되어, 70년 가까운 옛날, 꿈속에 그리던 그 ‘여인들’을 만나러 가는 감동이 적지 않았습니다. ‘만고풍상 비·바람’에 시달리면서도 당당하게 늙은 할머니들, 곱게 늙어서 나의 누님의 동기동창도 거기서 여러분 만났습니다. 누님은 가시고 벌써 20년이나 되었는데!

    우리는 언제나 다시 고향 땅을 밟아볼 수 있을 겁니까. 우리 군함을 한 밤중에 때려 두 동강 내고, 46명의 꽃다운 젊은 목숨을 앗아간 김정일과 그 악독한 정권을 그대로 두고, 오늘의 대한민국은 제 정신입니까. 무엇보다도 자유를 사랑한다는 오늘의 이른바 자유진영은 또한 제 정신입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혈육과 친척과 친지와 집과 전답을 다 버리고 38선을 넘어와, 오늘 모두 이 꼴이 되어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만났습니까. 대한민국 땅에서 세 끼 더운 밥 먹고 밤마다 따뜻한 잠자리에 들면서도, 북의 김일성·김정일 편을 드는 저런 고약한 인간들과 같은 하늘아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게 느껴집니다. 분통이 터집니다.

    왕년에 젊고 아름답던 ‘평양의 딸들’에게 나는 이렇게 부탁하고 나의 강연을 끝맺었습니다. “ 여러분, 통일이 되기까지는 죽지 말고 살아 있습시다. 대동강변 부벽루를 산책하고, 모란봉의 을밀대에 올라 능라도의 버드나무를 다시 굽어 보기 전에는 죽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김정일이 거꾸러진 고향 땅을, 그리운 고향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