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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위기가 고조됐던 1994년 평양을 방문해 남북정상회담 약속을 이끌어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려면 미국과 한국이 먼저 북한에 관계 정상화 노력을 제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3일 오후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고서 '핵 보유 북한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한국과 미국은 어렵더라도 북한과 직접적인 대화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아무도 평양에서 나올 마지막 답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직접적인 대화를 포함한 많은 노력을 쏟아붓는 데는 아무런 해가 될 게 없다. 미국과 한국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이 제한 없는 대화에 먼저 나서야 북한이 반응할 것이며, 북한과 계속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서는 안 되는 만큼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도 역설했다.
1994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해 제1차 북핵 위기가 불거졌을 때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약속을 이끌어냈던 당시를 소개하면서 "한반도와 인연이 깊지만 이때가 가장 깊은 인연을 맺었던 때였다"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 주석에게 남한으로 먼저 가서 비무장지대를 지나 직접 평양으로 갈 수 있다면 가겠다고 했는데 이를 김 주석이 수락했다. 1994년 6월 판문점에서 환영을 받으며 평양으로 향했는데 44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회고했다.
"나는 원자력 엔지니어 출신이라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었다. 아내와 나는 김일성이 모든 사안을 깊이 있게 알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고 그는 말했다.
또 "김일성 주석이 한반도 전체가 핵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내 생각에 동의했으며,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을 기쁘게 생각했고 조건 없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을 방문해보니 과거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과 선제공격 가능성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며 "북한이 지금 상황에서 뒤로 물러설 가능성이 적다"고 전망했다.
이어 "김일성 주석이 제안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상황 개선이) 힘들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적대 의사가 없음을 명시하고, 북한은 주변국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핵사찰을 받아들여야 미국과 외교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강연이 끝나고 참석자를 상대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카터 전 대통령과 일문일답.
--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대북제재가 강화됐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특정 국가에 대한 제재 및 금수조치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선량한 2천400만명이 50년 동안 고통받아 왔다. 북한 정권의 정책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그들의 고통을 강화하고 있다. 무역과 상업 거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방문하면 알겠지만 상황이 절박하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과 북한 시민들에 대한 처벌에 동참하고 있는데 이런 제재가 북한 정권을 강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한국 등 국가들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손을 내밀어야 한다.
--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2005년과 2006년 합의문이 있다. 한반도에는 어떤 핵무기도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과거 김일성 주석이 강력히 요청한 것은 꼭 직접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미 직접협상이 모든 주제에서 이뤄져야 한다. 북한은 한국, 일본, 대만에 핵우산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협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은 외부 세력이 자신들에게 군림하는 것을 싫어한다. 북한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우리도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6자회담도 좋아보이지만 미국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북미 직접대화가 병행해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 전쟁이 아닌 외교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 건강악화와 지도력 승계가 거론되고 있다. 이 지역 평화에 기회일까 아니면 위기로 작용할까.
▲김정일의 건강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아무도 모른다. 김정일 유고시 막내아들 김정은이 승계할 거라 알려진 바 있는데 화해와 미국의 정부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모르겠다. 어린 아들이 지도자가 되면 김정일 위원장과 다른 철학을 펼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같은 가족이고 절대 권력을 갖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권력은 군부에 있다고 본다. 군부는 아마 유연성을 적게 발휘할 거다.
북한 시민들은 외부의 공격 없이 평화롭게 산다는 보장과 경제적이고 인간적인 고통 완화를 원하고 있었다. 북한 정권에 외부 정치세력이 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원했다. 크게 바뀌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정권교체가 되거나 김정일이 사망하더라도 크게 변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