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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의 북쪽에 있는 짐바브웨는 옛날엔 로데시아로 불렸다. 이곳을 식민지로 개척한 백인들은 1960년대에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 白人 통치 정권을 세웠다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고립되었다. 로데시아는 金鑛과 草地 등 자원이 많고 빅토리아 호수가 있어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 영어가 공용어이다. 面積은 일본 정도인 39만 평방킬로미터이고, 인구는 1250만 명이다. 백인들이 끝까지 식민지로 붙들고 있었던 것은 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가 지금은 地上 지옥이다.
30년째 독재를 하는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이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를 망쳤다. 경제상황은 상상을 초월한다. 2008년의 인플레는 2억3100만 %였다. 1조 달러짜리 지폐까지 등장하였다. 실업률은 94%이다. 1인당 주민소득은 구매력 기준으로 100달러이다. 북한보다,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낮다. 2000년에 무가베가 백인들이 경영하던 農場을 국유화하여 쫓아낸 이후 외국 자본이 들어오지 않는다.
지도자를 잘만 만났다면 地上천국이 될 수 있었던 짐바브웨를 지옥으로 만든 것은 무가베와 김일성이었다. 공산주의자인 무가베는 무장 독립운동을 할 때 중국과 북한의 지원을 받았다. 1980년 선거에서 집권, 수상이 된 그는 10월 평양을 방문, 김일성과 회담하였다.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그는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고 한다. 1971년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가 김일성을 만나고 와서 사람이 달라진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차우세스쿠와 무가베는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식 통치행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洗腦된 북한주민들이 김일성을 열광적으로 찬양하고 있는 것이 부러웠을 것이다. 독재자들은 자신보다 더 강한 독재를 하는 자를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獨蘇전쟁중에도 히틀러는 스탈린을 부러워하였다고 한다.
무가베는 김일성의 주체사상 관련 책을 번역하고 김일성식 一黨독재와 인간개조를 꾀하였다. 김일성은 1981년 8월부터, 內戰 상태에 있던 짐바브웨에 북한군 고문단과 무기를 보내, 군인들을 훈련시키고 5여단을 창설했다. 병력 5000명의 5여단은 무가베 직속의 親衛부대가 되어 政敵 2만 명을 학살하였다. 북한군은 한때 짐바브웨에 3000명을 주둔시켜 놓고 이웃한 모잠비크, 앙골라, 이디오피아의 좌익정부를 지원하였다.
무가베는 1970년대 김일성뿐 아니라 , 차우세스쿠, 그리고 캠보디아의 학살자 폴 포트와 관계가 좋았다고 한다. 이들은 同類의 인간들이었다.
작년 5월 북한정권은 외교 사절단을 짐바브웨에 파견하여 환영을 받았다. 무가베는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고 연설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우리에게 武器도 주고 훈련도 시켜주었다”면서 “과거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도 우리는 그에게 감사한다”고 하였다. 김일성에게 감사한다고? 짐바브웨를 망쳐준 데 대한 감사인가?
3년 전 짐바브웨에 가서 빅토리아 호수를 구경하고 온 한국인 관광객은 “지폐에 유통기한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언제까지 이 돈을 쓰지 않으면 휴지가 된다는 표시가 있더란 것이다. 김정일은 최근 날강도식 화폐개혁으로 자신의 무덤을 더욱 깊게 팠다. 인플레는 두 달 사이 최고 40배, 즉 4000%를 기록중이다. 더 악화되면 짐바브웨의 年2억31000만%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김일성은 우상숭배를 수출하여 북한뿐 아니라 루마니아, 짐바브웨도 망쳤다. 우상숭배는 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국가자원을 집중적으로 낭비하여 경제를 파괴한다. 북한에선 아홉 명의 외국인 기자들을 위하여 10만 명의 群衆을 동원, 우상화 놀음을 한다. 10만 명을 동원하는 데 낭비되는 기름값, 전기값, 음식값이 모두 경제적 손실로 나타난다. 이런 짓이 축적되면 지도자는 살 찌고 인민은 앙상해진다.
한국은 ‘박정희식 경제개발 모델’을 수출, 중국과 월남 등 後發國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불행을 수출한 김일성과 행복을 수출한 박정희! 이 김일성 父子의 路線을 추종하는 從北세력이 진보, 민주, 개혁세력으로 위장,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從北노선의 민노당 소속 국회의원 강기갑은 한국이 본 받아야 할 무역모델은 ‘쿠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짐바브웨’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