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2002년 무렵 '3000개 또는 그 이상'의 원심분리기로 우라늄을 소량 농축하고 있었으며, 농축에 필수적인 가스인 우라늄 헥사 플로라이드(UF6·6불화 우라늄) 제조공장은 이미 1990년대에 건설했다고 파키스탄 원자폭탄 제조 책임자 압둘 카딜 칸 박사가 주장하였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27일 칸(Khan·73) 박사의 미공개 진술서를 입수하여 이같이 보도했다.
     
    칸 박사는 파키스탄 정부가 적어도 6년간 북한에 우라늄 농축에 관한 핵심 기술과 설계 도면, 기술적인 조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하여 핵탄두의 노동 미사일 장착 기술 및 국제 거래가 엄격하게 제한된 크리톤 제조법을 파키스탄에 넘겨주었는데, 크리톤은 핵 기폭장치에 사용된다.
     
    칸 박사는 1999년에 북한을 방문하였는데, 그들이 자체 기술로 건설한 UF6 공장을 둘러봤다고 진술했다. 그는 당시 어느 산의 터널속에서 현지 안내인이 완성된 핵탄두 3개의 부품이 들어있는 상자를 자신에게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탄두들은 한 시간 안에 미사일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북한의 UF6 생산능력은 초기에 年間 2t이었다가 이후 연간 10t 규모로 늘었다고 칸 박사는 진술하였다. 북한은 파키스탄에 실험용으로 UF6 1t을 보냈고, 파키스탄도 自國의 샘플을 북한 생산의 표준 모델로 쓰도록 제공했다고 한다.
     
    칸 박사는 북한과 파키스탄 사이의 핵-미사일 거래는 정권끼리 합의한 것이었다고 폭로하였다. 1994년 그는 당시 수상 베나질 부토(2년 전 사망)의 지시로 북한을 방문하여 1억5000만 달러를 주고 노동 미사일 10개와 관련 기술을 수입하고 북한 기술자 10명을 받아들여 자신의 핵개발 연구소에 거주하게 하고 관련 시설을 모두 보여주었으며 그들이 파키스탄의 핵 기술자들과 만나서 대화하도록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이런 일은 자신의 독단이 아니라 수상 및 三軍 참모총장의 합의하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하였다. 전 대통령 무샤라프도 물론 이런 거래를 알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파키스탄이 북한에 대하여 원심분리방식에 의한 우라늄 농축법을 가르쳐주면서 관련 장비들도 넘겨주었다고 진술하였다. 무샤라프는 칸 박사가 관련 기술을 북한에 넘겨준 것은 국가를 속이고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칸 박사는 무샤라프의 측근인 카드와이가 북한과의 거래를 관장하였다고 폭로하였다. 
     
    칸 박사의 증언은 제네바 합의에 의하여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기로 약속하였던 1994년부터 파키스탄과 북한 사이에 전면적인 핵-미사일 개발 협력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칸 박사의 증언은 黃長燁 선생의 증언과 일치한다. 黃 선생은 한국에 온 뒤 이렇게 말하였다. 
     
    "제네바 합의 직후 핵개발을 담당하고 있던 군수공업 담당 전병호가 나에게 오더니 러시아로부터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을 수입하여야겠는데 도와달라고 하였다. 며칠 뒤 그가 다시 오더니 이제는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면서 파키스탄이 북한의 핵개발을 도와주기로 하였다고 말하였다.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전병호는 핵실험을 하고싶어하였다. 왜 주석님께서 허락을 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파키스탄은 우방국인 중국과도 핵개발 기술을 교환하였다. 중국은 우라늄 50kg을 파키스탄에 거저 주어 핵폭탄 두 개를 만들게 하기도 하였다. 중국-파키스탄-북한은 核의 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