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십년 동안 오고 싶은 곳에 와보았다. 크메르 루주에 학살당한 300만 명 중 일부의 위령탑이 있는 곳. 삐죽이 솟은 위령탑 가운데는 유리로 만들어져 그 안쪽을 드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수북이 쌓인 두개골들의 무더기를.
     두 손을 합장하고 고즈넉이 묵념을 했다. 천도를 하지 못해 구천을 떠돌고 있을 영가들의 냉기가 온 몸을 시리게 했다. 두개골들 중에는 조막만한 것도 많았다고 한다. ‘반동분자’로 몰린 사람들의 아기들의 두개골. 15~16살 난 크메르 판(版) 홍위병 소년 소녀들이 그들의 머리를 나무에 패대기쳐 처참하게 살해했다는 설명이었다.
     “폴 포트가 자신의 이상을 그런 방식으로 추구하다가 저지른 만행이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의 추구'가 아니라, 광인(狂人)의 질병현상에 불과했다. 이상을 추구한답시고 수 백만 명의 사람을 때려 죽여? 말도 안 되는 소리.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 충실한 공산주의 동료들까지를 포함해 죽을 때까지 피의 숙청을 자행한 스탈린, ‘인종청소’라는 만행을 저지른 밀로세비치, 톤레 삽(Tonle sap) 호수를 시체 더미로 메운 폴 포트, 자신의 절대권력을 지키기 위해 주민 300만 명을 굶겨 죽인 김정일-이들은 ‘이상을 추구한 자’들이 아니라, 신(神)의 자리를 넘본, 타락한, 괴기한, 병든 메갈로매니액(megalomaniac, 과대망상가)들일 뿐이다.

     이런 병든 영혼의 싹은 한 때만의 예외가 아니다. 자신이 세상과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과대망상 하는 ‘거짓 메시아’ 의식, 그것이 절대 진리를 대표한다고 과신(過信)하는 극도의 오만, 그 오만으로 인해 자신은 집단학살(genocide)를 포함해 무슨 짓이라도 다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터무니 없는 특권 의식이 잔존하는 한, 폴 포트 같은 행위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크메르 희생자들의 두개골들은 먼 길을 날아 찾아온 이국(異國)의 참배객에게 바로 그 점을 애타게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두 가지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우리의 원혼(冤魂)을 천도해 달라”고. “인류의 이름으로 학살자들을 국제 전범재판에 회부해 달라”고.

     


     톤레 삽 호수는 오늘도 말이 없었다. 칼 같은 열대(熱帶)의 자외선이 돌아서 나오는 참배객의 뒷덜미를 사정없이 할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