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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은 東西를 가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다. 그 1년 뒤 동서독이 통일되고, 다시 그 1년 뒤 소련이 해체되었다. 유럽의 공산주의 체제는 1917년의 러시아 혁명 이후 73년 만에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였다. 쿠바, 월남, 북한, 중국 네 나라가 아직도 공산주의의 명맥을 잇고 있다.
유럽의 공산체제는 무너졌는데 왜 아시아의 공산체제는 健在한가? 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었지만 핵심은 이렇다.
1. 러시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東獨, 헝가리 등 유럽 공산국은 공산화되기 전에 민주주의를 맛본 경험이 있었다. 이 민주주의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가 1980년대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에 의하여 들불로 번진 것이다.
2. 아시아 공산국은 민주주의의 경험이 없다. 내부 변화의 불씨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외부에서 개혁 개방의 바람이 들어와도 제대로 불을 붙일 쏘시개가 없다. 유럽 공산국에선 기독교가 불씨를 溫存시키는 역할을 했으나 아시아에는 反共 종교도 없다.
3. 유럽 공산국은 내부에 민주화 세력이 있었고, 이들이 변화의 주체세력이 되었으나 아시아 공산국은 그런 내부 개혁파가 없었다. 월남과 중국의 개혁파는 민주화 세력이 아니라 실용파였다.
4. 유럽공산국가들은 공산체제 아래서도 민주화 운동을 끊임없이 해왔다. 1956년의 헝가리 봉기, 1968년의 체코 봉기가 그것이다. 이 운동은 소련군의 탄압으로 좌절되었다. 1989년 고르바초프는 東歐 공산국 지도자들에게 소련군의 그런 개입은 앞으로 없을 것이란 점을 사전 통보하였다. 이것이 變革의 초대장이 되었다.
5. 아시아 공산국의 지배층은 스탈린식 탄압을 주저하지 않는다. 민주화의 불씨가 없는 상태에서 무자비한 탄압력이 가해지니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수 없었다.
6. 서유럽과 미국은 東歐 및 소련 공산국가들에 대하여 민주화 공작을 끊임없이 하였으나 아시아 공산국에 대하여는 그런 작용을 하지 않았다. 대만, 한국, 일본의 對공산권 공작도 미미하였다. 오히려 중국과 북한의 對南, 對대만 공작이 더 맹렬하고 효과가 있었다.
6. 따라서 북한을 자유화시키려면 북한 안에 親韓 민주파를 만들어놓아야 한다. 한국의 군사력은 방패, 인권과 자유와 번영은 창이다. 군사력으로 敵의 남침을 막는 사이에 북한내부로 돈, 정보, 자유, 人權을 들여보내 북한사람들이 바뀌도록, 용기를 갖도록, 조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從北세력만큼 막강한 親韓세력을 북한 안에 만들어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