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김정일이 미국 여기자 둘을 석방한데 이어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 씨를 석방했다. 그러자 남쪽 언론들은 무슨 특전이나 받은 것처럼 이 사건을 ‘기쁜 뉴스’라고 대서 특필했다. 이게 정말 이럴 일인가? 유성진 씨가 석방된 것 자체는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명백한 비전향 장기수를 무조건 북송하고서도 북한으로부터 그 만한 ‘기쁜 반응’을 얻은 적이 없다. 그 때 그들의 자세는 마치 변방 屬國의 조공을 받는 天子의 자세, 上國의 자세 그것이었다.

    유성진 씨가 북한 여성 근로자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아직은 상세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지금 나와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유 씨가 한 북한 여성의 탈북을 종용했다”는 정도다. 그게 죄라면 북한이 남한 국민에 대해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라고 매일같이 선동하는 것은 그러면 얼마 만큼의 죄값을 치러야 하는 것일까?

    유성진 씨가 북한 여성 근로자에 대해 과연 죄가 될 만한 언행을 했느냐 안 했느냐도 앞으로 더 철저히 조사해 보아야 할 일이다. 십중팔구 아마 별 것 아닐 것이다. 혹시 약간의 표현상의 약점을 잡힌 정도일지는 몰라도. 

    김정일은 약간의 약점을 잡힌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최대한 욹어 먹는 데는 아주 道가 튼 인간이다.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서 사람을 억류하고 나서, 인권을 다른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남쪽 자유주의자들을 ‘주눅 들린 교섭자’의 난처한 처지에 서게 만드는 그의 수법. 참, 더럽고 치사하고 교활한 인질범이다.

    유성진 씨는 당연히 돌려보내야 할 사람이지, ‘김정일 수령님’의 특별한 은혜로 석방될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사람을 어쭙잖은 이유로 잡아 놓고 외교적인 이득을 챙기려는 작태가 마적떼 아닌 정상 세상에서 상식적으로 용납될 될 수 있는 일인가?

    김정일은 사람 장사를 즉각 집어치워야 한다. 그게 인신매매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김정일의 그런 인신매매를 마치 당연한 것인양 치부하는 남쪽의 당국자들과 미디어들이다. 그들은 마치 ‘神의 은총’이라도 받았다는 양, 김정일의 ‘유성진 석방’이 남북관계에 무슨 엄청난 큰 돌파구라도 마련 할 것처럼 떠들어 대고 있다. 정신이 빠져도 한참 빠진 위인들이다. 

    김정일은 통일전선 전술 이외에는 남쪽에 대해 다른 어떤 비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의 통일전선 전술에 이명박 정부도 십중팔구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념 없는 중도 실용주의자'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가 그 어떤 웃기는 모습을 띠우지 않을까 미리 걱정된다. 국민은 정말 괴롭다. 대통령 연설문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