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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막장 드라마'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논란은 국회의 공식 회의 테이블에도 올랐다.
22일 국회는 보란듯 '막장 드라마'의 최종판을 선보였다. 6월 임시국회 최대 쟁점법안인 미디어법이 결국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후폭풍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생중계 된 국회의 미디어법 처리 과정은 정치에 대한 여론 불신을 더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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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일 미디어법 처리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여야 의원과 보좌진이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막장 드라마는 예고된 것이었다. 이날 오전 한나라당이 민주당과의 협상을 종료하고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방침을 밝히면서 여야의 난투극은 시작됐다.
이날 반나절 간 방영된 국회의 막장 드라마를 시간대 별로 소개한다.
#1.오전 11시 30분 경.
국회 본청 밖 민주당 당직자와 경위들의 가벼운 몸싸움이 시작되면서 여야 난투극 시작을 알린다. 김 의장이 직권상정을 밝히면서 이를 저지하려고 민주당 소속 보좌진과 본청 밖에서 농성 중인 원외위원장 등이 본청 진입을 시도했다. 이때부터 '막말'이 오갔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시작됐다.
본회의장 입구 앞은 이때 부터 민주당이 봉쇄했다. 본청 안에 있는 사무처 직원과 보좌진까지 총동원해 출입구를 막았다. 인원은 60여명.
#2. 오후 1시 국회 본회의장 안.
한나라당 의원 100여명이 모여있다. 2시 본회의 소집을 요구했으니 직권상정에 대비해 미리 의장석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 문제는 본회의장 출입구가 봉쇄돼 의원들은 안에 갇힌 상황이 됐다. 더구나 처리를 위한 의석 수도 부족해 의원들 사이에선 "정족수를 못 채우면 어떻게 하느냐"는 불만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더구나 오전 일찍부터 본회의장에 들어온 탓에 점심도 거른 의원들이 대다수라 곳곳에서 "배고프다"는 아우성이 나왔다. 일부 의원은 방청석에 있는 기자들에게 "먹을 것 좀 갖다 달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고, 한 재선 의원은 보좌진에 전화를 걸어 "빵과 우유라도 가져오라"고 요구했지만 주변 의원들이 "보좌진들 지금 본청 못들어오는데 그것도 모르느냐"고 다그쳤다. 모 3선 의원은 "국회의장 보호조는 지금 배터지게 먹고 있다고 한다"며 "보직을 잘못 받았다"고 불만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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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일 여야가 대치중인 국회 본회의장 앞 중앙홀 ⓒ연합뉴스
#3. 오후 1시55분 국회 본회의장 밖.
출입문을 봉쇄하는 민주당(의원과 보좌진 포함 60여명)과 동원된 한나라당 보좌진 및 사무처 직원(70여명)의 1차 충돌이 벌어졌다. 예고한 본회의 시간이 임박하자 한나라당에서 입장 못한 의원을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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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싸움 중인 여야 보좌진 및 사무처 직원들. ⓒ연합뉴스
양측 몸싸움이 시작됐고 곳곳에서 욕설이 쏟아진다. 일부는 격한 몸싸움으로 부상을 당했다. 민주당 한 보좌진은 다리 인대가 끊어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때부터 양측 모두 감정이 격해지고 곳곳에서 멱살잡이가 벌어졌다. 민주당 사무처 직원들은 본회의장 주변 바닦에 물까지 뿌린다. 한나라당 보좌진이 접근하기 어렵도록 만들려는 것이었다.
10여분 뒤 양측은 다시 충돌한다. 곳곳에서 여직원 비명소리가 들리고 "하지마" "하지마"라며 다그치는 소리가 들린다. 한나라당 한 초선 의원이 "니들은 폭력정당이야"라고 소리치자 민주당에선 "오~~~"하며 야유를 보낸다.
국회내 집기도 총동원됐다. 민주당은 출입문을 봉쇄하려고 문희상 국회부의장실 복도에 있던 도자기까지 동원했는데 유리로 덮힌 이 도자기는 깨지면 다칠 위험이 커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안으로 들여놓았다. 본회의장 안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큼지막한 도지기가 들어오자 "진품명품 촬영하자는 거야? 가지가지 한다"고 비웃었다.
본회의장 밖에선 20여분간 양당의 몸싸움이 벌어지고 부상자가 속출한다. 이 과정에서 당직자가 의원과 멱살잡이를 하고 욕설까지 하면서 양측 감정은 더 격화된다. 한나라당 한 사무처 직원은 "초선 의원 주제에 XX놈이"라는 욕설을 퍼부었고 이에 질세라 민주당 보좌진도 "X자식아. 어디서 의원한테 욕설이야?"라며 주먹다짐을 벌였다. 민주당 초선 의원을 욕한 한나라당 사무처 직원은 민주당에는 욕설을 들었지만 한나라당 보좌진으로부터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20여분간 양측이 두차례 충돌했지만 민주당이 봉쇄한 본회의장 출입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에선 숫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뚫지 못하자 곳곳에서 한숨이 나온다.
#4. 오후 2시 30분. 본회의장 밖.
양측이 잠시 쉬고 있는 사이 본회의장 앞 중앙홀로 사복을 입은 건장한 남성 20여명이 들어온다. 국회 밖에 있던 언론노조원들이 민주당 지원으로 국회 창문을 깨고 불법진입한 것이다. 숫적 열세였던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은 일제히 일어서 박수를 보낸다. 불법진입한 언론노조원들은 마이크를 잡고 "창문을 깨고 들어왔다. 오늘, 내일, 국회가 끝날때까지 이 자리를 지키겠다"며 민주당에 합류했다.
한나라당 보좌진과 사무처 직원들은 국회 귀빈식당 앞 휴게소에 모여 다시 본회의장 출입문을 뚫을 작전을 짠다. 복장이 비슷해 피아구분이 안돼 비효율적이란 지적에서다. 결국 보좌진은 층별로 구별해 다시 본회의장 중앙홀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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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일 국회 본회의장 앞 중앙홀 주변 곳곳에선 멱살잡이와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연합뉴스
#5. 오후 2시 50분 본회의장 밖.
양측이 다시 충돌한다. 작전을 새로 짜고 온 한나라당은 숫적 우위를 바탕으로 인원을 나눠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다시 양측 난투극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멱잘잡이 주먹다짐이 여러 곳에서 연출됐다. 일부 보좌진은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나갔고 사태가 악화되자 의료진까지 본회의장 밖 주변에 대기했다.
이번에도 양측은 몸싸움만 벌이다 끝났고 10여분간 난투극 뒤 다시 휴식에 들어갔다.
#6. 오후 3시 1분 본회의장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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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법의 국회 본회의 표결처리 도중 민주당 의원이 의장석으로 달려들어 의사를 방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측 모두 서로를 마주보고 휴식을 취하는 상황인데 민주당 모 의원이 여권을 비난하는 시를 읊는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보수언론을 싸잡아 비난하는 내용인데 "똥개"라는 단어가 나오자 한나라당 사무처 직원 한 명이 "야! 그게 시냐"라고 비꼰다.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나온 비난이라 양측은 곧바로 난투극을 벌인다.
"X새끼" "XX놈" 등의 욕설이 오가고 곳곳에서 벌어진 주먹다짐으로 양측 보좌진 상당수 옷이 찢어지고 안경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몸싸움에 가담한 보좌진 대다수가 얼굴과 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누가 때렸는지, 누구한테 맞았는지 몰라 곳곳에서 "그 X새끼 잡아 죽일꺼야" "어딨어 감방에 처넣을거야" 등의 말이 난무했다.
#7. 오후 3시 27분 본회의장 밖.
김 의장이 사회권을 이윤성 부의장에게 넘기고, 이 부의장은 경호권을 발동하면서 본회의장 밖에 대기하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경위 도움을 받아 회의장에 입장한다. 이때부터 민주당 보좌진 및 사무처 직원과의 몸싸움이 다시 시작되지만 국회 경위와 한나라당 보좌진까지 가세하면서 결국 굳게 닫혔던 본회의장 문은 열렸다.
한나라당에선 박수와 환호성이, 민주당에선 야유와 눈물이 쏟아졌다. 뚫지못할 것 같던 한나라당도, 뚫리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민주당도 막상 본회의장 문이 열리고 미디어법이 통과되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회의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나라당의 모 당직자는 "막장드라마도 이 보다 더 하겠느냐"고 개탄했고, 다른 당직자도 "통과는 시켰는데 당장 내일 부터 쏟아질 비난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국회 상황을 생중계하는 한 방송사 앵커는 "또 해외토픽에 나올 법한 일이 벌어졌다"며 뉴스를 소개했다. 국회는 이날 어느 작가도 쓰기 힘든 장편 막장드라마 한 편을 보란 듯 방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