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25일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위원들이 중도 퇴장한 가운데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최종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보고서 골자는 당초 정부·여당이 발의한 입법정신을 존중하되, 일부에서 우려해왔던 여론독점 및 매체집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몇가지 보완책을 제시하였다.

    주요 내용은 주요 신문사의 지상파방송 겸영을 디지털전환 완료시점인 2012년까지 유보하고, 대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지상파방송 규모를 일정 가시청인구수 이하로 해 지상파방송 장악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 등이다. 또한 다른 선진국들과 비슷하게 진입규제를 완화하는 대신에 특정 개인 혹은 방송사업자군이 전체 방송시장에서 확보할 수 있는 비율을 제안하는 방안도 제안하였다.

  • ▲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 연합뉴스
    ▲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 연합뉴스

    이 보고서 결과를 바탕으로 여당은 민주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과 협의하여, 소유지분제한 비율을 포함한 절충안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정부여당이 제안한 소유지분허용비율을 축소하는 것은 법개정 목적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 타협이라는 현실 문제를 감안한다면, 이러한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9일 민주당이 발표한 미디어법 개정안은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6월 임시국회가 절반이나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법을 발표해 협상하자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고수해온 야당의 시간끌기 전략의 연속이라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특히 여당이 국회의사일정을 감안해 볼 때, 13일 전후에는 상임위의결을 거쳐 법사위, 본회의에 상정할 수밖에 없다는 발표 직후에 급조된 법 성격이 강하다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정략적 목적이 아니더라도 제안한 법개정 내용을 보면, 그러한 의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우선 야당의 방송법 개정안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진입자격을, 현행법 10조이하 대기업으로 하고 그 소유한도도 10%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여기에 사업권역을 지역방송사업자의 방송구역으로 제한하고, 의무송신도 제외하며 미디어렙에 의한 광고영업도 제한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 좋게 말하면 무지몽매하고 나쁘게 말하면 종합편성채널사업 자체를 매우 취약하게 만들거나 혹은 유명무실하게 해 기존 방송구조를 유지하자는 수구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지구상에 어떤 유료방송채널이 권역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는지 의문이다. 케이블TV나 위성방송 혹은 IPTV 등을 통해 전송되는 채널들은 특정 권역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고 장점이다. 그래서 미국의 케이블TV채널 사용사업자들이 지상파방송과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이는 미국시장에서 케이블TV와 같은 다채널방송시장이 절반 이상을 확보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한 국가를 넘어서 여러 국가의 케이블 네트워크와 위성네트워크를 통해 동시에 방송하는 CNN이나 BBC 월드와이드 같은 글로벌 슈퍼스테이션(superstation)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이유이다.

    한마디로 유료방송의 채널사용사업을 권역별로 분할하겠다는 발상자체가 기술적으로 무지하거나 아니면 사업자체를 활성화시키지 않겠다는 수구적 발상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주장인 것이다. 솔직히 민주당 개정안에서 강조하고 있는 지역권역이 그 동안 뉴미디어 진입때마다 신규사업자들의 시장안착을 발목 잡아왔던, 지역방송 보호, 지역지상파방송 권역별 재전송 등과 같은 전략의 진입장벽의 연속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TU미디어 그리고 최근 IPTV에 이르기까지 모든 뉴미디어사업자들을 고전하게 만든 이른바‘지역성’을 다시한번 활용해보자는 의도로 보인다. 

    사실상 내용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는 10개에서 15개 구역으로 세분화된 지역방송사들을 권역별로 나누어 재송신하게 하는 지극히 불합리한 ‘지역성’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종합편성채널의 시장진입을 억제하겠다는 뜻인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 의무재송신도 제외하자는 주장은 사실상 시장에서의 종합편성채널사업 진입의지 자체를 봉쇄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설사 이렇게 매우 취약한 법제도적 근거와 매우 엄격한 진입규제를 뚫고 시장에 진입하는 사업자가 있다고 하자. 그 결과는 기존에 진입했던 대부분의 신규사업자들과 유사하게 3-4년 이내 시장진입에 실패하고 자본조차 고갈될 것이 뻔하다. 그럴 경우 이들 사업자들은 다시 또 정부의 특단의 정책적 배려 혹은 지원을 통해서 연명하는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 ▲ 민주당 관계자들이 국회에서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 뉴데일리
    ▲ 민주당 관계자들이 국회에서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 뉴데일리

    결국 그 동안 적지 않게 양산해 온 이른바 공익적 성격의 방송들이 시장에서 실패했던 길을 또 걷게 될 것이다. 진입만큼 퇴출이 어려운 또 퇴출해서는 안되는 공익적 명분을 내걸고 많은 방송사들이 생존하고 있는 우리 방송구조로 볼 때, 결국 전적으로 국가부담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그렇게 될 경우, 민주당이 주장해왔던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강조해온 민주당의 방송정책이 정치적 예속화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민주당의 방송법 개정안이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는 또 다른 부분은 이른바 ‘준종합편성채널’이라는 제도다. 민주당은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공정성이 중요한 보도를 제외한 이른바 ‘준종합편성채널’을 통해 방송산업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즉, ‘준종합편성채널’을 등록제로 하고, 대기업을 비롯한 모든 사업자들의 진입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이 제도가 새로운 정책적 대안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종합편성이라는 법률적 용어가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특수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이와 유사한 개념을 또 만든다는 것 자체가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하나 더 늘어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준종합편성채널’이 이미 우리 방송에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엄격하게 본다면, 대부분의 교양채널들이 ‘준종합편성채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법 제69조(방송프로그램의 편성 등) ④항에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는 허가를 받거나 승인을 얻거나 등록을 한 주된 방송분야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⑤항에는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가 허가를 받거나 승인을 얻거나 등록을 한 주된 방송분야 이외에 부수적으로 편성할 수 있는 방송프로그램의 범위와 종류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고 하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대다수 오락채널들이 다양한 오락장르를 복합적으로 편성하는 종합오락채널로 운영되고 있고, tvN과 같은 종합오락채널들은 교양프로그램들은 부편성으로 조합하여 민주당이 주장하는 ‘준종합편성채널’을 사실상 하고 있다. 심지어 대다수 교양채널들이 부편성으로 기존의 지상파방송 오락프로그램이나 철지난 영화들을 편성해 운영하고 있는 것도 ‘준종합편성채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민주당은 ‘준종합편성채널’이라는 마치 새로운 법개념을 만든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미 시장에서 무수히 많은 준종합편성사업자들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들 등록사업자들에게는 현행법에서도 1인지분제한, 대기업, 신문사에 대한 진입제한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민주당의 ‘준종합편성채널’안은 산업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도 아니고 새로운 정책적 시도도 아니다. 도리어 이러한 법개념을 창출해 법적으로 칸막이만 하나 더 만드는 규제강화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보도가 제외된 준종합편성채널들이 성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 하겠다. 실제로 앞서 예를 들었던 본격적으로 종합오락채널을 시도한 tvN과 같은 채널은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교양채널로 진입해 한물간 지상파방송 오락프로그램들을 부편성으로 편성하고 있는 채널들은 겨우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우리 방송시장의 열악한 구조와 선순환경쟁의 실패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큰 폭의 규제완화를 통해 경쟁을 도모하자는 것은 침체된 방송시장의 활력을 되찾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도를 포함한 종합편성채널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지상파방송사를 비롯한 소수 보도채널들이 여론독점력을 완화해 여론다양성을 신장시키자는 취지도 담고 있다. 결국 민주당의 준종합편성채널 도입을 통한 방송산업활성화는 새로운 정책도 바람직한 정책도 아닌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대안일 뿐이라 하겠다.

    그러면 민주당의 방송법 개정안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지금의 방송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경쟁력있는 신규 사업 혹은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최대한 억제해 보자는 수구적 전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제5공화국 이후 골간을 유지해 지상파방송 중심의 현행 방송법 틀 아래 도입된 신규매체들이 지상파방송을 비롯한 기존 매체들의 구조적, 전략적 진입장벽아래 시장안착에 실패한 사례들을 살펴 보면 잘 알 수 있다. 

    정부·여당의 방송법 개정 혹은 미디어법 개정의지는 이렇게 폐쇄적인 법제도 아래 과잉보호 받아오면서 시장을 지배해 온 기존 방송사업자들을 가지고는 디지털시대에 더 이상 시청자들의 주권을 실현하고 도모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때문에 국가에 의해 항상 통제될 위험성을 가진 현행 법제도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방송의 민주화, 언론다양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의 개정안은 어쩌면 가장 반민주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