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혼미한 정국 상황을 북한 당국자들은 결코 놓치지 않았다. 이미 지난 4월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2차 핵실험의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이렇게 빨리 서둘러 진행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 조전을 보낸 상태에서 핵실험을 강행하는 대담함을 선보이자 세계는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 속에서 한반도 상황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선 북한의 태도는 문명사회의 도리를 넘어선 비열한 행위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10·4 성명을 통해 마지막까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지속하고 싶어했던 고인의 영전에 2차 핵실험이란 강수를 던진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상심에 빠진 우리 국민과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용서받기 어려운 무례 자체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번 핵실험의 결과는 아직 예단키 어렵지만, 만약 성공했다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이 북한을 외면하지 못할 정도로 핵 능력을 보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실험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줄 것을 구걸하기보다는 실질적 위협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은 엄청난 파괴력과 위험성을 안고 있기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미 장거리 로켓 발사를 무리하게 서둘렀다가 오바마 신임행정부와 불필요한 마찰을 경험했던 북한이 자제력을 잃고 성급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는 점에 대해 정부는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이 국제정세의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초조하게 서둘고 있다는 점은 예기치 않은 국면으로 사태가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반증한다.

    물론 미국이나 중국이 북한문제의 해결을 피할 수 없도록 압박하는 것이 어쩌면 북한의 의도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해결이 반드시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정반대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혼란을 틈타 핵실험을 단행했다는 점은 세계의 여론을 등지게 했고 도덕적 명분을 잃게 하였다는 점에서 뼈아픈 실책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처한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우선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조체제하에 북한이 핵 국가로 전환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북한의 핵 보유를 자칫 인정해주는 일은 동북아의 핵 도미노는 물론 무기도입 경쟁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소모하게 만들 것이다. 결국 간신히 되살아나고 있는 경제회복의 불씨마저 꺼트리는 위험천만한 일이 될 것이다.

    둘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조치가 가시화하는 동안 북한은 이를 전쟁위협이라 주장하며 도발도 불사할 듯 위협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러한 외환 앞에서는 우리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해야 하며, 실제로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선보여야만 한다. 지난 50여 년간의 대북경험을 통해 볼 때, 그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이 단결 합심하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대북관계에 관한 한 합의된 목소리를 보여주지 못했다.

    일단 북한의 선택은 확연해 보인다. 미국이 양보할 때까지 기술적으로 완성도를 높여가며 시간을 번다는 계산이다. 북한 내 후계구도나 여론을 통합시키는 데도 유리할 뿐 아니라 만약 우리 사회 내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자세를 자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면 자신들에게는 더없이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 국민의 수준이나 미국의 국내정치 동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이다. 정부는 결코 북한의 협박에 끌려다니지 않는다는 점을 확고히 보여주어야 한다. 핵을 갖는 북한이 가능성이 아닌 현존의 위협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군사적 대응책을 포함,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진정한 비핵화의 선택만이 몰락하는 북한을 구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사회와 경제를 재건하는 유일한 길임을 꾸준히 설득해야 하지만, 합리적 대응을 기대할 수 없을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넘어 하나 된 목소리를 내야 할 시점이다. '위대한 한국인들'의 단결된 모습은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