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한국과 일본이 숙명의 라이벌 대결을 벌인다. 아시아 국가들간 대결로 우승이 가려지는 것은 지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이후 무려 27년만의 일이다. (한국이 일본과 결승에서 맞붙어 한대화의 극적인 3점 홈런으로 5-2 역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마선수들만 참여했으며, 프로선수들로 구성된 드림팀간 국가대항전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우승을 놓고 맞붙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에 이번 WBC 결승전은 '아시아 최고'가 곧 '세계 최고'임을 전 세계 야구팬들에게 각인시킨다는 상징적 의미도 갖고 있다. 그 시상대 최상단에 기왕이면 한국이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한일전을 앞두고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은 양팀 소속 라이벌 감독 및 선수들이 180도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잡초같은' 김인식 감독 vs '최고 엘리트' 하라 감독, '메이저 출신' 봉중근 vs '토종 사무라이' 이와쿠마, '화려하지 않은 노력파' 이용규 vs '천재 메이저리거' 이치로 등 도무지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상반되는 캐릭터를 갖고 있다.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인식 감독은 선수시절은 물론 코치시절에도 철저하게 '불세출의 스타' 김응룡(현 삼성라이온즈 구단 사장)에게 철저히 가려진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다. 짧았던 한일은행 현역 실업선수 시절에는 홈런왕 김응룡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지켜봐야 했고, 코치시절에는 해태 수석코치로 김응룡 감독의 V4(1986-1989) 신화에 가려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하라 다쯔노리(原辰德) 감독은 '엘리트 인생'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구명문 도카이대(東海大) 간판타자로 활약하다 '드래프트 1순위'로 최고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 그 후 14년간 '붙박이 4번타자'로 활약했으며, 코치를 거쳐 감독에 오르는 등 야구 인생을 100% 요미우리에서만 보내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이같은 행운을 누리고 있는 야구인은 나가시마 시게오(長嶋茂夫) 전 요미우리 감독 이후 하라 이외에는 없다. 요미우리 V9 신화의 주역이었던 장훈과 왕정치도 이와같은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이번 WBC에 참가한 일본대표팀이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닉네임을 붙인 데에도 이러한 하라 감독의 이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엘리트 감독(하라)에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천재타자(이치로)를 주축으로 일본리그 MVP와 타이틀보유자들을 모조리 망라한 최고의 진용으로 팀을 구성한 만큼 '사무라이'라는 일본의 정신적 우상으로 불러도 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하라의 패배는 곧 '사무라이 정신'의 패배이며, 이것은 일본이라는 국가와 민족의 총체적 패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세계 제2위 경제대국 일본이 그토록 WBC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일본대표팀 감독이었던 호시노 혹은 왕정치와는 또다른 상징적 의미를 하라가 갖고 있다. 그는 가와카미-나가시마-하라로 이어지는 일본 야구의 정통성을 계승한 적자다.

    봉중근과 이와쿠마의 대결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봉중근은 메이저리거 출신이면서도 정작 국내리그에서는 LG 소속으로 11승밖에 올리지 못했으며, 다승, 방어율, 탈삼진 등 투수 타이틀을 하나도 따지 못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와쿠마는 라쿠텐 소속으로 지난 해 21승을 올리며 다승왕과 방어율와을 차지했고, '일본판 싸이영상'에 해당되는 사와무라상과 퍼시픽리그 MVP상을 수상했다. 봉중근이 메이저리거 출신이라는 것을 빼고 본다면 훨씬 더 화려한 프로 경력을 자랑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번 맞대결에서는 봉중근이 승리를 거뒀다. 

    이용규와 이치로의 대결 또한 흥미진진하다. 이치로가 일본야구 타격왕 7연패와 메이저리그 최다안타상 6연패를 달성하는 등 '야구 명예의 전당'급 슈퍼타자인 것과 비교해볼 때 2006년 최다안타상이 유일한 타이틀 경력인 이용규의 이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러나 WBC에서의 지금까지의 활약상만 놓고 보면 팀에 대한 기여도는 이용규 쪽이 이치로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김태균-이범호-추신수로 이어지는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파괴력을 극대화하는데에 이용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이 있었기에 상대팀 투수진이 흔들렸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야구 스타일을 비교해보면 한국은 '잡초', '승부사', '마술사' 등의 표현이 어울리는 반면 일본은 '엘리트', '메인스트림', '천재' 등의 수식어가 더 어울린다. 과연 '잡초'와 '엘리트'간 맞대결에서 누가 승리할 수 있을까? 그 결과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