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비 등을 두고 점거농성을 벌이던 서울 용산 재개발 시위현장에서 경찰과 시위대 6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차기 경찰청장에 내정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조기 문책론이 확산되고 있다. 시너로 무장하고 화영병과 새총이 동원된 과격시위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명피해가 발생한 만큼 조기에 사건을 수습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이 여권에서 나온다.

    청와대는 "문책보다 진상규명이 먼저"라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인명 희생이 빚어진 것은 참으로 가슴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다시 이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숙연한 분위기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는 사건 경위와 여당이 마련한 대책에 대한 보고가 있었던 것으로 참석자들은 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상황이 어떻게 진행됐고 어디까지 왔는지 정확히 밝혀야 책임소재도 따질 수 있는게 아니겠느냐"며 "상황이 빚어진 데 대한 안타까움과 유감은 변함없지만 사태를 마무리지으려면 당연히 진상을 명확히 규명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있을 수 없는 인명사고가 발생하긴 했지만 시위대가 경찰은 물론이고 상가와 시민을 향해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상황에서 경찰이 신속한 진압작전을 펴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도 있다"면서 "사태 전모를 확인하기도 전에 무조건 문책부터 하라는 것은 맞지 않다.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같은 공식 입장과 달리 신속한 사태수습이 여론 악화를 막는 정공법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집권 2년차를 맞아 '경제살리기 개각'을 단행하고 경제위기 극복 속도전에 나선 마당에 자칫 지리한 정치 공세로 비화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특히 사건 발생 직후 지난해 촛불시위와 비슷한 양상이 서울 도심에 나타난 점에 주목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치공방이 길어질 경우 여러 의혹만 양산, 국정운영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면서 "서둘러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물을 것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역시 여론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날 홍준표 원내대표가 "사고 경위 여하를 불문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자 문책이 좀더 조속히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김 청장에 대한 조기 문책 논란이 시작됐다. 박희태 대표가 21일 '선 진상규명'이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상황을 길게 끌어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앞서 20일 김수정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은 사건 관련 브리핑에서 "19일 오후 7시 김석기 청장과 차장, 기능별 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책회의에서 특공대 투입을 청장이 최종 승인했다"고 책임소재를 밝혔다. 김 청장 거취 문제에 대한 내부 정리가 있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 청장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너무 안타깝고 애석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내가 책임을 질 일이 있다면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