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방문 마지막날인 30일 이명박 대통령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동, 러시아 명문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대통령은 대강당에서 이어진 연설에서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의 목표를 향한 힘찬 새 출발을 하는데 하나의 커다란 장애가 있다"며 "그것은 바로 한반도의 분단"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 지르는 군사분계선은 단지 한민족을 남북으로 나누어 중무장으로 서로 대치하게 하는 분단의 철조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며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의 장애물일 뿐 아니라 태평양이 대서양을 만나고 아시아가 유럽과 하나되는 것을 가로 막는 '세계의 장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대학 대강당을 가득 메운 300여명 학생들은 태극기와 러시아 국기를 번갈아 흔들며 이 대통령의 강연을 경청했다.

    특히 연설에 앞서 크로파초프 총장은 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이 대통령이 한러 양국관계를 한단계 격상시킨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며 이 대통령의 기여가 컸기 때문"이라며 "이 대통령의 대외, 대북정책에 관해 설명해줄 수 있는 전문가 교수를 초청하고 싶다"고 공식 요청했다. 또 이 대학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새 정부 대외정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이 대통령의 사회정책' '이 대통령의 남북정책'이라는 수업을 개설했다"며 'MB강좌' 개설을 알렸다.

    아울러 매년 독일과 러시아간 돌아가며 열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스피치와 같은 공동 학술행사를 한국과도 갖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 대통령의 강연 이틀 뒤인 10월 2일에는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갖게 된다. 이 대통령은 크로파초프 총장의 제의에 "마침 오는 2010년이 한러 수교 20주년"이라며 "젊은이들의 교류, 문화교류를 잘 추진하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강연에서 전날 한러정상회담에서 논의된 한반도 종단철도(TKR)과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의 연결 사업 의지를 거듭 밝혔다. 이 대통령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젊은이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동방으로 다가가 서울의 벗을 만나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육로로 우랄 산맥의 거대한 품에 안겨 러시아의 친구들과 재회하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면서 "TKR과 TSR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는 극동.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사업을 촉진해 러시아와 남북한 모두에 이익이 되고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구축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또 "러시아가 유라시아의 심장부(heartland)로서 '조화와 융합의 21세기'를 선도할 국가가 되려면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러시아와 한국이 비전을 공유하면서 함께 노력해 유라시아 시대가 만개하는 날, 인류는 역사를 새로 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상트 페테르부르크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이 대통령은 이 학교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등 러시아 주요 실력자들과 '동문'으로 인연을 맺어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 시작 부분에서 "러시아를 이끌고 있는 여러 분야 지도자들과 동문이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인사해 박수를 받았다. 1819년 설립 이후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은 파블로프(1904, 생물학) 메치니코프(1908, 생물학) 등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대통령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한러 경제협력이 날이 갈 수록 활발해지고 있고 지난 6월부터 4억달러 규모의 현대자동차 공장도 건설되고 있다"면서 "'유럽으로 열린 창'이었던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한국으로 열린 창'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과 러시아의 만남은 아시아의 동쪽과 유럽의 서쪽이 만나고, 태평양의 서편이 대서양의 동편과 조우한다는 의미를 지닌다"며 "우리 두 나라는 유라시아 시대라는 비전을 공유하라는 역사의 부름을 받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서로를 다시 발견해야할 때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설 도중 이 대통령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자신의 학창생활을 솔직하게 소개해 학생들로부터 공감을 끌어냈다. 이 대통령은 "어린 시절 동해를 바라보며 미래의 꿈을 키워온 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유라시아 시대와 한러협력의 당위성, 그리고 밝은 미래를 다시 확인하게 됐다"며 "우리가 발트해를 바라보며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났듯 힘찬 아침 해가 솟구치는 대한민국의 푸른 동해를 바라보며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학위복을 입은 채 강연을 마친 이 대통령은 이 대학 학생들과의 대화시간에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수차례 박수를 받았다. 이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김윤옥 여사와 같이 아름다운 동반자를 만날 수 있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을 받고 "내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게 아니라 집사람이 나를 만났다"고 재치있데 답해 폭소가 터져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어 "(양국간) 학위인증제도도 하려고 하니 많이 참여해달라"면서 "한국에 많은 동반자가 있으니 많이 와달라"며 양국 젊은이들의 상호교류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